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짧은 삶을 살다 간 그에게 글쓰기가 고통이었을지, 아니면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방법이었는지 궁금하고 안타까웠어.
어젯밤, 나는 카프카의 변신을 다시 읽었어.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마치 무언가가 내 가슴을 단단히 조여 오는 기분이 들었어.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 보니 자신이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었다.” 이상하지? 단지 활자일 뿐인데도 그 문장은 나를 꽉 붙잡고 흔들어댔어. 나는 그레고르가 된 듯 느껴졌어. 등에서 갑각이 솟아오르고, 사지가 낯설게 무뎌지는 그 느낌이 너무 생생했거든.
책을 덮고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창밖 풍경이 낯설게 변해 있었어. 밤새 내린 눈이 모든 걸 덮어버렸더라. 익숙한 거리와 나무들이 온통 하얀 껍질로 뒤덮여 있어서, 마치 세상이 다른 모습으로 변한 것처럼 생경했어.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순간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생각하게 되더라. 모든 것이 같은 곳에 있지만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그 이질감. 그레고르의 방에서 나를 둘러싼 세상으로 그 느낌이 스며드는 듯했어.
카프카가 친구 오스카 폴라크에게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아마도 이런 순간을 염두에 두었겠지. 그의 문장은 단순히 읽는 게 아니라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야. 그레고르의 이야기는 책장이 넘어가는 동안 내 안의 얼어붙은 감각들을 하나씩 깨부쉈어. 노동, 가족, 인간으로서의 가치, 그리고 우리를 묶고 있는 무언가 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나를 가만두지 않았지.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하기 전에도 이미 '톱니바퀴'에 불과했어. 상사와 동료들은 그의 이름 대신 그를 "일하는 기계"처럼 대했고, 가족은 그가 벌어오는 돈으로 안락을 누렸을 뿐, 그의 마음은 들여다보지 않았지. 그래서 그레고르의 변신은 단지 겉모습만 바뀐 게 아닐지도 몰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역할로만 존재하는 삶을 살던 그가 드디어 진짜 모습을 드러낸 건지도.
더 슬픈 건, 그레고르 자신조차도 끝까지 스스로를 가족의 부양자, 노동자로 여겼다는 점이야. 벌레가 된 몸으로도 그는 가족을 위해 애쓰려 했지. 그의 희생은 점점 무시되었고, 마침내 가족은 그를 완전히 필요 없는 존재로 치부하게 돼. 그의 마지막은 정말 조용했어. 마치 오랫동안 부서질 듯한 소리를 내던 오래된 기계가 결국 멈추는 것처럼, 그렇게 조용히 사라졌어.
카프카가 말했듯, 우리에게 필요한 책은 자살처럼, 추방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처럼 우리를 흔들어 깨워야 한다고 했어. 변신은 그런 책이야. 그레고르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진부하고 뻔하지만 결국 피할 수 없는 질문들이 떠올랐어. 인간이란 무엇일까? 가족과 사회 속에서 내가 가진 역할이 사라진다면, 나는 여전히 나로 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벌레처럼 여겨지는 순간, 나는 그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너무 흔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에는 처음 마주한 것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
새벽 2시쯤이었을 거야. 나는 책을 덮고 한동안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어. 이미 어둠은 깊었고, 방 안엔 숨소리만 남아 있었지. 그레고르가 갇혀 있던 그 방이 내 안에도 자리 잡은 것 같았어. 한없이 좁고 어두운 공간, 그러나 그 안에서 버티려고 애쓰던 그의 숨결이 아직도 어딘가 남아 있는 듯했어.
나는 무심히 손등을 문질렀어. 혹시라도 거기 비늘 같은 것이 남아 있을까 봐. 그의 몸이 바뀐 건 결국 그의 삶이 응축된 하나의 상징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카프카의 글은 얼어붙은 감각을 깨는 도끼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충격을 남기고 가. 그는 죽기 전에서야 비로소 "살고 싶다"라고 말을 했다는데, 짧은 삶을 살다 간 그에게 글쓰기가 고통이었을지, 아니면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방법이었는지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