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of Being Wild | 王家衛
이 세상은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눌 수 있어. 왕가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
그리고 나는 엄청나게 좋아해.
<아비정전>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뭐야, 이도 저도 아니구만” 할 수도 있을 거야. 사건이 크게 터지는 것도 아니고, 속 시원하게 정리해 주는 결말도 없으니까. 대신 이 영화는 시간과 감정을 아주 느리게, 은근하게 스며들게 해.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것 같지만, 그 사이사이에 흐르는 공기와 눈빛이 전부 다 무음의 이야기야. (이것이 바로 소리 없는 아우성?)
이 영화는 60년대 홍콩, 주인공 ‘아비’의 이야기야.
난닝구에 올백머리까지 스타일로 소화하는 남자지만, 모든 관계가 오래가지 않아. 장만옥이 연기한 수리진과도, 이후 만난 여인(유가령)과도 마찬가지야. 연애 초반에는 세상에서 제일 뜨겁게 사랑할 것처럼 굴다가도, 어느 순간 차갑게 등을 돌려버리지.
내가 보기엔, 아비는 애초에 ‘타고난 바람둥이’라기보다 사랑 앞에서 늘 뒷걸음질 치는 사람이야. 그는 어릴 적부터 버려졌다는 감각 속에서 자랐거든. 친어머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자신이 누구의 아들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살아왔으니, 마음을 완전히 열면 언젠가 또다시 버려질 거라는 두려움이 항상 앞섰을 거야. 그래서 상대가 너무 가까워지기 전에 먼저 선을 그어버리는 거야. 그게 아비만의 사랑 버티는 법, 일종의 생존 기술인 거지.
물론 그렇다고 이런 아비의 태도를 낭만적으로 미화할 생각은 없어. 어떤 이유라도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줄 권리는 없지. 하지만 아비의 마음속 틈과 오래된 그림자를 알고 나면, 그의 냉정함과 이기적인 무심함이 고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양가적인 감정이 생겨나.
아무튼, 그래서 아비의 연애는 늘 ‘시작은 뜨겁고, 끝은 차갑게’로 끝나버려. 이건 변덕이 아니라, 아비 나름의 ‘생존 방식’이야. 마음을 다 열었다가 버려질 바엔, 처음부터 거리를 두는 거. 그 옆에 있는 사람은 답답해서 미칠 수밖에 없지. 전화기 옆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거나, 창가에 기대 담배만 태우며 시간을 죽이는 모습들. 왕가위 영화엔 꼭 이런 ‘기다림’이 스며 있잖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 같은데, 그 시간이 곧 감정이 돼버리는 거. 서로를 향해 걷고 있는 것 같지만, 끝내 닿지 못하는 거리. <아비정전>에도 그 감각이 짙게 배어 있어.
그리고 왕가위 특유의 카메라 움직임. 살짝 느린 슬로모션, 반쯤 잘린 프레임, 습기와 열기가 섞인 공기 속에서 흐르는 음악. 그게 말보다 훨씬 진하게 인물의 마음을 전해줘. 장국영이 “1분”을 이야기하는 도입부 장면만 봐도 그래. 단순한 플러팅이 아니라, 정말 지금 이 순간이 단 한 번뿐이라는 걸 아는 사람의 목소리로 들리거든.
이렇게 이 영화에는 장국영보다 양조위를 훨씬 더 좋아하는 나조차 아비에게 끌리게 만드는 묘한 결이 있어. 인물들이 서로를 스치고 지나가는 그 ‘틈’. 대사보다 눈빛, 표정, 숨겨진 공기 같은 것들. 장만옥이 전화를 붙잡고 아무 말도 못 하는 장면이나, 유덕화가 창밖을 보며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그렇지. 그 순간들은 단순히 멋있어서가 아니라, 화면에 스며 있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와 쓸쓸함 때문이야. 누군가는 이런 나를 “꿈보다 해몽”이라고 하겠지만, 원래 해몽이 더 중요한 거 아니겠어?
다시 말하면, <아비정전>은 ‘이야기’보다 ‘기분’을 느껴야 하는 영화 같아. 처음 본 사람에겐 조금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몇 번이고 다시 보면 인물들 사이의 미묘한 온도 차와, 결국은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결말이 은근하게 오래 남아. 처음부터 마음을 확 사로잡는 영화는 아니지만, 한 번 마음속에 들어오면 아주 오래 남지. 그래서 나는 아마 또 볼 거야. 그리고 다음엔 또 다른 장면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남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