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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lave, 2024

Faith Without Certainty

by maggie chae

영화 〈콘클라베〉를 봤어. 교황이 세상을 떠나고, 새 교황을 뽑으려고 추기경들이 시스티나 성당에 갇혀서 투표를 하는 이야기야. 근데 그냥 종교 행사 뒷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더라. 진짜 “믿음이란 게 뭘까?” 싶은 질문을 계속 던져.


“제가 그 어떤 것보다 두려워하게 된 죄는 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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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는 ‘믿음=확신’이라고 생각하지. 흔들리지 않는 태도, 의심 없는 마음. 근데 이 영화는 반대로 말해. 확신이야말로 제일 무서운 죄라고. 왜냐면 확신이 생기는 순간, 사람은 닫히거든 - '갇힌다'가 더 와닿을까.. 내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의견을 듣지 않고, 결국 다투고 쪼개져. 영화 속 추기경들도 그래. 모두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 확신을 포장한 권력 싸움이더라.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순종이라니까 거부감 들지? 하지만 곱씹어 보면 ‘맹목적으로 따르라’는 게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라”는 뜻이야. 교회의 진짜 힘은 다름을 버텨내는 다양성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교회는 늘 그걸 못 견뎌했잖아.


생각해 보면, 믿음의 본체인 예수님도 마지막 순간엔 확신하지 못하셨어.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예수님의 이 절규는 신앙을 무너뜨린 게 아니라, 오히려 살아있는 신앙 같다고 생각해. 왜냐면 신앙은 확신이 아니라 관계 같거든 - 확신이 없더라도 관계를 놓지 않는 것.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 화자가 “의심하는 교황을 허락해 달라”라고 기도하는 장면이 그렇게 기억에 남더라. 완벽한 지도자가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걸어가는 지도자. 이게 어쩌면 우리 믿음의 얼굴이 아닐까 싶어.





믿음은 답을 다 아는 게 아니야. 믿음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거야. 확신을 쥐고 있으면 질문이 멈추고, 질문이 멈추면 신앙도 멈추지. 근데 의심은 계속 묻잖아. “정말 그런가? 내가 뭘 놓치고 있지?” 그 질문이 있을 때만 신앙은 살아 움직여.


확신이 없으니까 더 간절히 붙잡고, 의심이 있으니까 더 깊이 들여다보는 거지. 그래서 나는 이제 믿음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어. 믿음은 의심과 동행하는 용기라고.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믿고 싶어. 교회가 필요로 하는 건 완전무결한 지도자가 아니라, 의심할 줄 아는 지도자. 그리고 우리 삶에도 마찬가지로, 의심과 함께 걸어가는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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