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를 위안 삼아 나를 아프게 하는 일은 그만두어야겠다
사실 난 겨울에는 영 기운을 못 차리는 편이다.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서 나서 그렇다고 자주 변명하곤 하는데, 가끔은 진짜 그렇다고 믿기도 한다. 나는 좀 더 좋은 사람으로 나아가는 걸 포기하지 않으려고 꽤 자주, 제법 엄하게 자신을 채찍질하는 편이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투털대면서도 그런다. 요즘은 그 욕심이 지친 나를 억지로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그래도 영 힘에 부치자 결국 다시금 차가워진 날씨를 탓하고 만다.
비바람을 겪지 않고서 어떻게 무지개를 보겠는가
중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친하게 지냈던 친구인 진은 매일같이 내게 편지를 써서 전해주었다. 말이 편지지 그냥 종이쪽지에 한두 문장이 적힌 적도 많았다. 주로는 그날 읽은 책에서 발견한 글귀나 공부하다 발견한 좋은 말 같은 걸 적어주는 식이었다. 그중 하나가 저 문장이었다. 힘들 때 제법 견뎌내게 하는 말 같아서 나는 저 말을 꽤 좋아했다. 나중에 장 선생님께 전해 듣기로는 저 문장은 속어 같은 건 아니고 웬 가요의 가사인가 그랬는데 어떻게 그 문장이 유명해졌다나.
이제 살면서 쓸 일도 거의 없다지만 중국어가 괜히 아깝다 생각이 들면 나는 중국 드라마를 찾아서 튼다. 열심히 보지 않아도 그냥 틀어둔 채로 지낸다. 제법 알아들을 줄 안다는 생각에 안심하면 중국 드라마는 진짜 재밌는 게 이렇게나 없을 일이냐? 하고 끄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누워서 드라마를 틀어두고 잠이 들까 말까 하던 차에 한 대화가 귀에 쏙 들어와 박혔다.
야 무지개를 보려면 비바람을 지날 수밖에 없다지 않아!
하이고, 그래서 넌 살면서 지금껏 무지개를 몇 번이나 봤는데?
영웅 드라마의 극치에서 주인공이 친구에게 말이 대의지 무모하고, 쓸데없고 과한 고통을 그래도 우리는 주인공이니까 이겨내자! 하고 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영웅놀음 나는 당최 모르겠고 그저 안정이 최고인 친구의 대답은 어딘지 모르게 통쾌하다. 그 잘난 주인공도 말문이 막혔으니 더욱이 고소하다.
한때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느니,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식의 말을 자주 들었다. 어쩌면 지금도 표현만 달라졌을 뿐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지내는지도 모른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수없이 크고 작은 전쟁을 치러야하는 우리 사회는 필연적으로 피로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만다.
기다리던 무지개도 실제로는 건물에 가리거나, 너무 옅거나 기대했던 모습이 아닐 적도 많았다. 몇 번이나 볼 수 있는지도 모를 막연한 무지개를 위안 삼아 나를 아프게 하는 일은 그만두어야겠다. 날이 차갑다. 손과 손을 맞잡아도 어쩔 수 없이 시리다. 손은 호호 불어 잠시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자. 봄이 오고, 또 여름이 오고, 장마도 오면 그래, 그때쯤 다시 무지개를 기다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