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 거절

사실 나이가 들면 자연히 확신에 소극적이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by 단정



“적어도 저 사람들만은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나는 이제껏 엘도라도를 제외하고 인간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불행한 사람들만 보아왔지요. 하지만 저 여자와 테아토의 수사만은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확신해요. 내기를 걸 수도 있어요.”


도저히 내기와 관련해서는 떠오르는 것이 없어 이번 주도 역시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생각 없이 펼쳐 든 책의 첫 문장에 내기가 등장했다. 두둥. 이게 무슨 일이람? 글을 쓰라는 신의 계시인가. 저 대사를 한 사람은 결국 내기에서 졌다. ‘저 여자’는 무려 자신이 모든 피조물 중에서도 가장 불행한 여자라고 말했고, 테아토의 수사 역시 지긋지긋한 수도원을 불태워버리고 싶다고 한다. 뭐 아무튼 이러 저러하다가 결국 진짜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아주 작은 농장을 가꾸면서도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가던 늙은 농부였다는 이야기.





어릴 때는 ‘손에 장을 지진다’는 소리를 비롯해서, 패륜적이게도 부모님을 걸거나, 믿지도 않는 하늘을 걸고 맹세를 하는 둥 어지간히 확신에 차서 지냈다. 뭘 그렇게까지 자신만만했던 건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 말들을 뱉던 순간만은 셀 수 없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도 ‘내기’라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최근에 겪은 내기가 없는가?

내기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떠올리려 했을까?

너무 소소한 내기들을 끊임없이 해서 의식하지 못한 채로 지내왔을까?


내기했었는지, 했는데 기억을 하지 못하는지, 실제로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의 나는 어릴 때처럼 내기를 걸어대지 않는 건 분명하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확신이 어려워졌을까.



대학 시절 즈음에 나는 취업을 하면 한 직장에서 평생 일할 거라고 확신했다. 아빠처럼 20년, 30년 그렇게 한 회사에 몸담고 주인의식(그놈의!) 가지고 일하며, 나중엔 제법 중요한 자리라도 한 자리 꿰어차는, 뭐 당연히 그럴 거라는. 그렇게 이십 대 중반이면 결혼을 했을 거로 생각했고, 서른 살이 넘으면 꽤 근사한 어른이 되었을 거라 믿었다. 여전히 인간관계에 집착해 상처받으며 살 것 같았고, 매번 입에서 불을 뿜으며 분노하고, 연을 끊는다고 부르짖으며 관계의 악순환을 영원히 반복하리라 확신했다.


아무렴, 사람은 쉽게 변하는 게 아니니까.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변했는지, 변한 건지,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 휩쓸려 떠내려간다. 확신할 것은 나날이 줄어든다. 생각과 같이 흘러간 부분도 분명 있겠다. 하지만 글쎄, 그런 부분은 훨씬 공들여 찾아야 한다.


한 회사에서 20년은커녕 2년을 일한 경우가 없다. 이십 대 중반은커녕 삼십 대 중반이지만 결혼은 기약이 없으며, 그 시절 예상한 멋진 어른이 어떤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현재와는 다른 것 같다. 인간관계에 있어 나는 꽤 차분한 사람이 되었으며, 그 덕에 이제는 제법 유연하게 관계를 유지해나간다. 확신했던 모든 것이 내기를 했다면 졌을 것들이다. 졌기에 더 행복한 일도, 덜 행복한 일도 있다.

다만 이제사 생각한다.


차라리 처음부터 확신하지 않았다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래, 내기 따위 이겨도, 져도 상관없다. 그보다는 하지 않겠다 마음먹는다. 그러니 무작정 확신하는 대신, 확신이 없다고 주눅드는 대신, 확신하지 않겠다고 자신해본다.

그렇게 모든 가능성에 무궁무진을 더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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