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
“그래도 너가 있어서 다행이었어. 이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때처럼 모든 걸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단정짓고 끝이라는 말에 사로잡히는 것 같지는 않아.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이 제자리를 찾아갔으니, 살다가 또 우리의 흐름이 맞아떨어지면 다시 반갑게 인사하자.”
며칠 전에는 어정쩡하게 밀어두고는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지나보낸 관계를 단정하게 마무리 지었다. 당시에는 머릿속을 채운 말이 너무 길고 장황해 어떻게 해도 풀리기 어려울 것 같던 그 실마리가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저 일어날 일이 일어났었음을 다 정리하고 나서야 알았다.
7월 말일자로 10년간 나와 여러 형태로 가깝게 지낸 공간이 문을 닫았다. 갑작스러운 통보로 많은 사람들이 상처 입었고, 그들의 눈물을 바라보며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나 역시도 당장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이 있는 일이었지만 어쩐지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무뎌지고 무감해졌다기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당해서 얻는 것이 없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그렇게 나는 요 몇 주간 달래고 들어주는 일에 많은 기운을 썼다. 물론 대단한 위로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니고, 그저 시간이 지나면 이런 것도 다 별일도 아닐 거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잘 들어줄 수는 있었겠으나 좋은 위로를 건네진 못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아무래도 요즘 일진이 사나운 것만은 확실해서, 미역국을 음력 생일에라도 먹으러 내려가야겠다고 했는데, 조카들이 와있어서 곤란하겠다는 엄마의 대답. 다시 한숨만 푹 내쉰다. 역시 풀리는 게 없다는 사실에 맥이 빠졌으나 미역국을 안 먹기엔 징크스가 마음에 걸리니 배달이라도 시켜 먹겠으니 걱정하지 말란 말 을 남겼다.
엄마가 끊으려다 아참, 한다.
“그... 집에 비가 새거나 하지는 않지?”
“ᄏᄏᄏ...?? 진심?”
기가 차서 코웃음.
나름의 위로이며 사과라는 사실을 안다. 그 정도는 알만한 나이가 됐다.
몇 개의 끝과 여전히 꼬여 있는 많은 실타래를 바라보며, 모든 것이 정돈된 채로 마무리될 수는 없음을 쉽게 끄덕이며 받아들인다. 자연스레 풀릴 것들도, 어중간하게 유지될 것들도, 생각보다 오래 꼬여있을 것들도. 생이 쌓여갈수록 실타래들이 함께 늘어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가급적 정갈하게 정돈했으면 한다. 실타래 하 나하나를 풀어치우겠다는 마음보다는 제가 가진 최선의 형태로 정돈해 놓는 데에 힘쓰는 것이다. 그것이 체념을 배운 끝이자, 시간의 힘을 체감한 자가 정한 나름의 순응이다. 끝의 형태가 점점 복잡해지는 게 어른이 되는 일인지도 모르 겠다. 그저 가능한 잘 맺어야 시작도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끝은 언제나 시작 과 맞닿아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