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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Jan 02. 2022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침입자

아가의 탄생

2015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10개월 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가, 척척이(태명)를 만났다. 빠르게 진행된 출산 과정으로 무통천국(?)은 남의 이야기였고,오장육부를 쥐어짜듯 뼛속까지 아려오던 산통을 인내한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은은한 빛이 감도는 새벽, 온기를 불어넣는 울음으로 내 품에 한 생명이 안겼다.

양가에서 각각 첫번째 그리고 두번째 아가였기에 온 가족은 신이 났다. 잠자는 게 팔할인 사진조차 당장 인화하여 집안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시고 매일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난다고 하신다. 태어난지 채 일주일도 안된 아가의 얼굴 생김새를 양가 모두 나름대로 분석하며 이마는 엄마를 닮고 턱은 아빠를 닮았다는 등의 갖가지 해석을 내놓기에 바빴다. 아가 이야기로 시작해서 아가 이야기로 끝맺었던 그때 모두 두둥실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수유를 끝내고 입맛을 다시는 모습이나 평온하게 잠자는 모습, 살짝 달라지는 미세한 표정의 변화까지, 나 또 하루종일 아가를 바라보고 있는게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산후 회복 이야기는 잠시 잊기로 한다. 작디 작지만 오롯이 한 생명으로 숨쉬며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내가 이런 사랑스러운 아가를 뱃속에 품고 있었는지 새삼 믿기지 않을정도로. 한편으로는 이 아가를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을지 막연한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세상살이가 항상 즐겁지만은 않을텐데, 앞으로 아가가 살아갈 시대는 또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머릿속으로는 온갖 근심을 다 떠안기도 했다.

발가락이 옥수수 알갱이 같던 시절

 조리원 생활을 접고 오롯한 세 식구가 되어 다시 돌아온 집. 이 날부터 본격적인 '멘붕' 의 순간이 찾아왔다. 여전히 날은 무더웠지만 나는 긴팔에 두꺼운 면 양말을 신어야 했으며 젖을 물리는 것이 익숙치 않아 수유 때마다 땀으로 샤워를 하고 있었고, 불편한 엄마의 마음을 아는 듯, 척척이 역시 떠나가라 울부짖던 그 모든 혼돈이 총 망라되고 있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육아 전쟁의 서막인 것인가.  


 다행히 세계대전(?)급으로 판이 커지기 직전, 산후 조리사님 덕분에 2주간 어느정도 평화로운 휴전을 경험했다. 그녀 덕분에 아가와 함께하는 것이 일상인 '뉴노멀(New normal)'의 세계에 연착륙할 수 있었다. 늘 여유롭기만 했던 저녁 시간이 사치인, 한창 재미나게 TV를 보고 있던 와중에도 척척이의 으앙~한마디에 비상시국이 되는, 그리고 깊은 밤 정적을 가르는 그의 울음 소리에 자동기상해야만 하는 새로운 일상으로의 초대. 아기는 남편과 나의 삶을 송두리째 재편성한 전대미문의 존재이자 새로운 일상을 가져온 침입자인 셈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침입자였고 그로인해 누군가의 삶의 방식 또한 바꾸어 놓았으리라. 새로운 이들이 새로운 문화를 가져오듯 그 덕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고 생각지도 못했을 것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들 가장 중심에 자리잡아 작은 몸짓, 표정 하나만으로도 모두에게 웃음꽃을 피우게 만들었던. 어쩌면 그들의 가치관까지 변화하게 했을, 가장 사랑스럽고 환영받았던 침입자였던 것이다.


운명처럼, 순리대로 차례가 되어 나 역시 내 삶의 침입자를 선물처럼 맞이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침입자와의 기대되는 동거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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