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삶은 그 어느때보다 평온하고 충만하다. 꽤나 자신감있게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딱히 조건이 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주목받으며 훨씬 더 속도감 있게 나아가던 시기가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도취되고 달떠있었지 행복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그 속도감과 어떠한 방향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기분,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 중심에 서 있는 느낌이 나름의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발전이자 성취감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건 농도 짙은 기쁨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순간의 고점은 내가 이 악물고 달리기를 멈추는 순간 뚝 떨어지기 십상이며, 그렇게 지쳐버린 나는 길에 우뚝 서서, 혹은 주저앉아 내가 꽤나 확실히 가졌다고 생각한 것들이 추락하는 모습을 깊은 상실감과 함께 바라보며, 지독한 허무와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행복과 평온은 상실로부터 찾아왔다. 불꽃같으면서도 달빛같았던 최근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내가 나 자신에게 온연하게 집중하고,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의 요구를 진지하게 듣고, 타인에게 언제나 편리하고 유쾌한,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고, 내 시간과 삶을 온전히 나에게 맞추어 정리할 수 있게되자, 나는 처음에는 가슴이 타는 듯한 얼떨떨한 기쁨을 느꼈다. 비로소 다시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다시 찾아내서 따뜻하게 안아준 내 자신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그 파묻혀 있던 자아를 잘 돌보기로 다짐했고 그 보상으로 스스로 차분히 쌓아올리는 행복, 외주 주지 않는 단단한 행복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전의 나는 체크리스트 달성 중독이었다. 내 삶에는 강한 기강(?)이 있었다. 매일 5시 30분에 일어나고, 애플워치로 수면 시간을 측정해서 꼭 7시간 30분이 넘도록 하고, 업무 시간에는 핸드폰을 아예 보지 않고 집중해서 일하며 도움을 청하는 모든 동료들에게 최대한 빨리 답변해주고, 퇴근 후에는 매일 기타 연습하고, 운동하고, 독서하고, 사람 만나고, 일주일에 1-2개의 영화를 보고 등등 하루가 너무 많은 것들로 차 있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는 최대한 부담없고 편리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내가 그렇게 할 능력과 여유가 있기에 그렇게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만나자고 하면 둘 다에게 편리한 시간과 장소를 찾아내고 맞추려고 최선을 다하고 업무를 수행하듯이 타이트하게 약속을 잡았다. 내 부담감과 피곤함은 별로 고려 요소가 아니었다. 동시에 연인이나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쓸 때면 그로 인해 내가 달성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약간의 상실감과 보상심리를 느끼곤 했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는데 상실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지금 떠올려보면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살았던 그때의 내가 좀 가련하기도 하다. 인정 욕구에 허덕이는 어린 자아. 심지어 그때의 나는 이 모든 것을 나를 위해서 한다고 생각했고, 나의 삶을 독립적이고 이상적이고 매력적이라고 칭해주는 사람들의 말에 더더욱 굳건히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시기에 대한 후회는 없다. 분명 이런 시기가 있었기에 현재의 깨달음이 온 것이고, 속도감과 흥미로운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이 시기를 나는 또 나름대로 소중한 기억이자 나의 특별한 조각으로 간직한다.
깨달음 후에 내 삶은 바뀌었다.
알람을 설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핸드폰을 확인하지 않고,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는다. 그저 차를 한 잔 하거나, 책을 보거나, 일기를 쓰거나 아침을 먹거나 운동을 하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사적인 메시지들은 하루 두 세번 내가 에너지가 충분한 상태이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선택적으로 답장한다. 체크리스트를 To-do가 아닌 나의 꾸준한 성장 데이터의 기록용으로 사용한다. 했는지 안했는지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으면 하고 만약 했다면 얼마동안 무엇을 했는지를 기록한다. 놀랍게도 이런 식으로 같은 리스트를 다르게 인식하자 기타 연습이나 운동 등 루틴을 할 때의 부담감이 사라지고 오히려 게임에서 경험치를 쌓아 레벨업을 하는 것 같은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해야 되어서 하는 게 아니고, 하고 싶어서 한다. 이전에는 45분 이상 기타 연습을 하는 것이 부담이고 힘들었는데 이제는 흐름을 잘 타면 1시간 30분을 거뜬히 한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눈을 바라보고 사람을 만나는 순간은 다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온연하게 집중한다. 사람들을 흥미롭고 소중한 존재로 바라본다. 동시에 그들이 나에게 즐거움이나 안정감 혹은 에너지를 주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시간을 투자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멈추고 그저 내 삶에서 흘러 나가게 둔다. 인위적으로 상황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는다. 서로 스케줄과 시간이 맞지 않는다면 굳이 약속을 잡으려고 아등바등하지 않고, 리듬이 잘 맞을때 자연스럽게, 큰 제약 없이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나는 내가 아등바등하지 않으면 상황이 잘 흘러가지 않을 것이며, 이로 인해 잃는 것들이 많을 것이고, 그것은 내 선택이니 감수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였다. 거의 모든 상황들이 무리하지 않아도 훨씬 잘 흘러가기 시작했고, 나는 더 창의적이고 생산적이고 빛나는 삶,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기분이고, 사람들과의 교류는 더 깊어지고, 루틴을 해 나가는 것 조차 훨씬 즐겁고 가볍게 느껴지며 나는 강요되지 않은 꾸준한 성장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결과의 통제에 대한 집착을 버리자, 모든 것들이 어느 정도는 다 '생각하기 나름'이 되었고 나는 나에게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유연하게, 즐기면서 삶을 유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외부의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언제까지나 내가 이렇게 평온한 상태에만 머물 수 있다고 믿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상황은 계속해서 바뀔 것이고 때로는 내가 나의 평정을 유지할 수 없을만큼 큰 파도가 닥쳐와 속절없이 허우적거려야 할 것이다.
다만 이제 나에게는 꽤나 단단한 믿음이 있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도 나는 나만의 즐거움과 행복, 평온의 조각을 발견하고 다시 반드시 행복의 길로 굽이굽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견고한 믿음. 생각해보면 그건 항상 내가 제일 잘 하는 일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만의 행복과 기쁨의 조각을 발견해 내는 것.
그 모든 흔들리는 순간들 속에서 언제나 반짝이는 것을 찾아내는 나의 사랑스러운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