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혹은 작가의 숙명은 항상 독자를 상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실질적으로 가 닿을 수 없는 그 익명의 '군중'을 생각하면 금새 막연해지고 심지어는 이유 없이 불안해지고 만다. 길을 잃은 느낌이 든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 듣고 싶지 않아하는 이야기, 그저 웃고 잊을 이야기, 위로와 공감을 줄 수 있는 이야기, 조용한 반감과 어색함, 불쾌감마저 불러일으킬 이야기, 혹은 누군가의 영혼에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야기. 또는 그저 조용히 무관심 속에 사라져 갈 이야기들.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싶고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에는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어느 곳에 눈을 두는가는 온전히 사람들의 자유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내가 상정하는 독자가 오직 나 뿐이라면, 정말로 어떤 이야기를 떠들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소리가 된다. 처벌(?)받지 않고 마음대로 떠들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권력이고, 자유이고, 해방이다.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드는 진정한 동력은 무엇일까? 창작의 희열? 사람들이 들어주고 공감하고 칭찬해 줄 때의 만족감? 지적 허영심? 생각의 명료화? 감각의 재구성? 내적 교류에 대한 갈증?
사실 어떠한 것이라도 상관없다. 글을 씀으로써 나 자신을 발견해가는 작업과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내적 보상은 이미 나의 존재와 생활 양식에 단단히 자리잡은 분리할 수 없는 패턴이다.
사람들은 사람들이고, 이야기는 이야기. 사실상 이야기가 어떠한 식으로 사람들에게 가닿고 자리잡는가는 그 이야기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게 오늘도 어떠한 의식을 치르듯이, 기묘하게 따뜻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미지의 허공을 향해, 혹은 거울 속 나 자신의 눈동자 속에 또 다른 영혼의 조각을 투여해본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