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삶은 언제나 내가 생각했던 내 성향보다는 조금 더 흥미롭게 흘러갔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떠돌아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라고 굳게 믿어왔던 나는 어쩌다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을 했고, 어쩌다 일본에서 일을 하다가 또 갑자기 북유럽에 와서 일을 하게 되었고, 2-3년정도 거주 후 내가 원래 이 나라에 태어났어야 한다고 강하게 느끼며 정착하기 위해 집을 사야겠다고 생각했고, 집을 보기 시작한지 1주 반 만에 집을 샀으며 지금까지 거의 20개국에 다다르는 나라들에 여행과 출장을 다녀왔다.
대부분의 결정들은 꽤나 충동적이고 빠르게 이루어졌다. 혹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져서 굳이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할 필요 자체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큰 결정을 할 때는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나이브함과,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어짜피 결과는 통제할 수 없으니 내가 전적인 책임을 지고 결정을 한다면 일이 어떻게 되든 크게 후회하지 않으리라는 신념, 그리고 새롭고 거대한 불확실성에 뛰어들어 본다는 두근거림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금방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다.
또한 내가 내렸던 어떤 큰 결정들도 나에게 재앙을 가져다 주지 않았는데, 혹은 사람마다 재앙이 뭐라고 인식하는지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다고 생각한다. 내 개념 상으로 사실상 재앙은 자연재해나 사고, 급작스런 질병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나머지는 인식과 조율의 범위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생에 원칙이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항상 내가 자연스럽게 의존하게 되는 패턴이 있다면 그것이 새로운 일이고 조금이라도 흥미가 생긴다면 일단은 해 보아야 그에 대한 의견을 형성할 권리가 생긴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견을 형성할 권리'가 나에게는 꽤 중요하다. 무언가를 시도해 본 후에는, 어떤 의견을 가지든 내 자유지만 시도해 보기도 전에는 그에 대해 미리 판단하고 불평할 건덕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종종 경험 포인트를 쌓아가는 게임처럼 느껴지며, 나는 이를 통해서 계속 레벨을 올려가며 성장하지만 레벨 자체가 모든 것을 보장해주지 않으며, 컨트롤을 유지하고 무엇보다 재미를 잃지 않아야 이 게임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사실 이것저것을 다 잘 하는 편은 전혀 아니다. 일이나 공부에 있어서는 꽤나 특출나다고 생각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고, 비실비실하고, 성인이 되고 나서야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고, 스키를 타는 법을 배웠고 기타를 치기 시작했으며 외국에서 혼자 살고 마침내 내 집을 마련하고 나서야 많은 것들을 깨지고 부딪쳐 가며 시도하고 배우기 시작했다. 어떠한 경험 혹은 기술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렸을 때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이기 때문에 다 큰 어른이 되어서 아이와 같이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것은 약간의 머쓱함과 조급함을 동반한 일이었으나, 사실 그 과정에서 다시 아이로 돌아간 기분, 새로운 것을 배워 가는 반짝이는 설렘과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삶은 여전히 나에게 새롭고 다양한 가능성의 지평이다.
나에게는 이러한 신념이 있다. 이는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경험으로 단단히 입증되었다.
시간은 유한한 것이 맞고 그에 따라 우리는 끝없이 조급함을 느끼지만, 사실 어떤 것을 특정 시기에 해야한다는 믿음은 허상이며, 나의 기준에 따라 그때 가장 매력적이고 강렬하게 느끼는 가능성에 몸을 맡기다 보면 이를 경험하며 꾸준히 성장해 온 나 자신이 훨씬 더 많은 행복과 그 외의 다양한 감각들, 그리고 가능성을 자연스럽게 가져다 준다는 것. 내가 나에게 주어진 그 유한한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보낼 것인지를 선택할 완전한 자유 - 두렵게까지 느껴지는 그 거대한 자유 -를 인식하면, 그 맥락에서 시간은 무한해진다. 개인은 개인의 삶을 어떤 식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무한한 자유와 책임을 가진다.
그리고 그 어떤 삶의 경로도 잘못되지 않았으며, 시간은 결코 낭비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삶의 가능성이 나를 이 곳으로 데려다 주었고, 만약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그냥 하면 된다. 안타깝게도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적립되지 않는다. 삶이 내게 주는 가장 큰 시련인 동시에 선물을 꼽으라면, 그 어떠한 것도 고정되고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자유로워진다.
돌아돌아 다시 본론으로. (애초에 본론이 있긴 한가?) 나는 사람들이 긴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며, 나 역시 의식적으로 만연체의 글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주절주절 늘어놓는 장광설을 보고 싶지 않고 좀 더 작가 쪽에서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 핵심과 정수만을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대책없이 지껄이는 자아를 통제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북유럽에 집을 샀고, 이 나라에서 현재 내 미래에 대한 생각이 닿는 범위까지는 정착하여 살아갈 생각이며, 내 방식대로 꾸며가기 시작한 나의 첫 보금자리에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번득이는 영감과 고통스러우리만치 강렬한 창작욕을 느낀다. 나의 삶의 다양한 부분에 대해 기록하고 아무도 이를 요구하지 않았던 세계에 투척하고 싶은 욕구와 조급함을 느낀다.
그래서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쓰고 싶은 게 많다. 경험, 문학, 영화, 미술, 성찰, 잡념, 고뇌, 존재, 실용적 지식, 혹은 그 모든 것의 잡탕. 물론 내 연극적 자아는 여전히 별로 비밀스럽지도 않은 세속적 인정 욕구와 허영에 시달릴테지만, 꽤나 고마운 우연으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인식하는 독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그래서 끝없이 변화하는 내 영혼을 꿈꾸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담대하게 목도하고 싶다.
어느 정도는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찬미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