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잃은 시대의 언덕에 서서

by Sundance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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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옛 것이 요즘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전쟁, 비극, 결투, 질병과 같은 거대하거나 특수한 조건이 인간을 증폭시키고 고양하던 시대, 정념과 시대 조건이 인간의 삶과 죽음을 휘두르기에 인간은 범용한 존재의 한계를 뛰어넘어 마침내 위대한 상징이 될 수 있던 시대 - 이른바 낭만의 시대에 속절없는 향수를 품고 사는 사람이었다.


이에 반해 현대는 아름답기에는 너무도 편리하고, 신속하고, 납작하고 얕아 보이기만 했다. 인간을 극한까지 몰고가는 조건의 부재 속에 우리는 더 이상 진실로 고통받지 않고 진실로 깊어지지 못하며, 따라서 진실로 아름다워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 조건과 본질에는 사실상 변한 것이 없다. 오히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자유와 선택지로 인해 길을 잃고 방황하거나 그저 무뎌지기 너무도 쉬운 시대 속에서, 문득 끝없이 방향을 잡아내고 꿋꿋이 걸어가는 인간의 소박한 위대함, 이른바 현대의 미학의 가능성을 어느날 느끼게 되었다.


영원한 것이 없는 혼돈의 세계 앞에서, 안개 바다의 언덕 위에서 방랑자로서 발을 디디고 담대하게 혼란을 목도하고, 거대 담론이 인간을 규정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없으며, 목숨을 걸 만한 사상도 정념도 없고, 나의 선택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필연적으로 언제나 변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끝없이 이해하면서 항상 불완전한 결정을 내리며, 그것이 삶 자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단단함과 용기를 가질 때에야 마침내 스스로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는 시대, 각자 자신 속에 온연한 세계를 창조해가는 자아 증폭의 시대의 위대함과 아름다움. 절대적이지 않기에 오히려 영원히 그 빛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그 찬란한 불씨.


이렇게 불완전한 글을 위대한 작가가 되기 위한 시도도 빛나는 사상과 개념을 기리고 장식하기 위한 수단도 아닌, 그저 한 연약한 자아의 표현으로서 세상에 던져보는 것도 그런 현대의 낭만의 한 조각일 것이다.


인간은 반드시 환멸하고 방황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끔찍하게도 아름답게 만든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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