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령은 지루하고 고행은 관능적이다

by Sundancekid
IMG_0703.jpg '이것은 파이프가 맞다'

나는 그가 글 쓰는 데 열중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대신 그가 만약 진주조개 층에 둘러싸인 섬에서 살았다면 진주 장사에 전념해서 성공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 그러자 독창성이란 것이 정말로 위대한 작가들이 저마다 자기만의 왕국을 지배하는 신이라는 걸 입증해 주는지, 아니면 이 모든 것에 조금은 속임수가 있는 게 아닌지, 작품들의 차이란 것도 각각의 다른 개성들 사이에서 절대적으로 상이한 본질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그저 단순한 노동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中 작가 베르고트에 대하여



문득 꾸준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이것저것 관심 있는 것도 시도하는 것도 많은 편인데, 누군가 나에게 취미를 물어본다면 그 많은 것들을 나열하기 보다는 '새로운 것을 경험해 보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활동들을 꾸준히 몰입해서 하는 것'이라고 개념화해서 대답한다. 후자에 속하는 것은 독서, 글쓰기, 기타, 운동 등인데, 이러한 활동들에 꾸준히 몰입하는 것은 나에게 인간으로서의 매력과 삶의 감미로움, 자아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깊은 매료를 가져다 준다.


나는 단순한 노동, 꾸준한 노력의 누적이 언젠가는 가져다 주는 필연적인 성장의 맛에 도취되어 있다. 요행, 요령, 재능, 타인을 통해 얻은 기회와 결과는 시시하고, 납작하고, 금새 지루해진다.


딱히 결과를 바라지 않고 과정 자체에 몰입하며 나아갈 때, 세간의 반응을 신경쓰지 않고 내가 이끌리는 일을 꾸준히 할 때, 이리저리 떠벌리지 않고 성장과 성취의 기쁨을 홀로 맛볼 때 비로소 나는 빛나고 있는 나 자신을 온연히 느낄 수 있다.


오늘은 별로 글을 쓰고 싶은 의욕이 들지 않았지만, 이렇게 다른 지성들의 목소리를 빌려서라도 꾸준함이 주는 단단한 따뜻함과 환희에 대하여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영감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꾸준함을 생각할 때 마다 마음 속에 떠올리게 되는 이동진 평론가의 너무도 아름다운 글귀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조금은 게으르고 나른하게, 그러나 여전히 꾸준하게.


"자연 과학에서 프랙탈이라는 게 있습니다.

프랙탈이 뭔가 하면, 나무의 작은 가지를 하나 꺾어 세워 보면 그게 큰 나무의 형태랑 같다는 거예요. (...) 다시 말해서, 부분이 전체의 형상을 반복한다는 말을 프랙탈이라고 해요.


저는 인생도 정말 프랙탈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지금 천사가 있고, 천사가 어떤 한 사람의 일생을 판가름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의 일생을 처음부터 다 보면 좋겠지만, 천사는 바쁘니까 그렇게 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할게요. (...) 그럼 어떻게 하느냐? 천사는 아무 단위나 고르는 겁니다.
예를 들어 그게 저라고 한다면, 저의 2008년 어느 날을 고르는 겁니다. 그리고 그 24시간을 천사가 스캐닝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날 제가 누구한테 화를 낼 수도 있고, 그날따라 일을 잘 해서 상을 받았을 수도 있죠. 어찌 됐건 그 24시간을 천사가 본다면, 이걸로 그 사람의 일생을 판단할 확률이 95%는 될 것 같아요.

무슨 말인가 하면, 성실한 사람은 아무리 재수 없는 날도 성실합니다. 성실하지 않은 사람은 수능 전 날이라고 할지라도 성실하지 않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는, 이렇게 하루하루가 모여서 인생이 만들어지는 거지 인생에 거대한 목표가 있고 그것을 위해 매진해가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제 인생 블로그에 대문구가 있습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이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인생 전체를 우리가 플래닝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렇게 변화도 많고, 우리를 좌절시키는 일 투성이인 인생에서 어떻게 해서 그나마 실패 확률을 줄일 것인가? 그것은 하루하루 성실하게 사는 것밖에 없다는 거죠."

by 이동진 평론가



토요일 연재
이전 08화예술적 충동과 푸른 당나귀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