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방식으로서의 미학

by Sundance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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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정해진 의미가 없다면, 의미를 만들어 내는것은 나 자신, 그 의미에 질감을 더하는 것도 나 자신이다.


미학은 나의 사고방식의 중심에 있는 언어이고, 나에게 있어 아름다움은 단순히 감각적인 즐거움을 넘어선 사고의 틀, 표현의 원칙, 존재의 방식이다. 나는 내 삶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개념이나 경험이 본질적으로 어떤 것이든 - 혹은 아무것도 아니든 - 나의 미학 내에서 적절하게 표현되고 실현되기를 바란다.


아름다움은 매우 세속적이고 표면적인 것에서부터 훨씬 심층적이고 암시적인 것까지 꽤나 다양한 층위를 포괄한다. 그리고 나는 아름다움을 목도했을 떄 그 아름다움을 구조화하고 분석하는 것을 통해 또 다른 종류의 의미를 형성하고 감각적 쾌감을 느끼곤 한다.


사람들이 나에게 그렇게 끊임없이 새로운 일들을 시도해고 다양한 일들을 꾸준히 잘 해낼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이냐고 종종 묻곤 했다. 그때마다 원체 성향이 그런듯 하다는 시원찮은 답변 외에는 나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나른한 오후에 해답처럼 영감이 떠올랐다. 그것은 미학이었다.


그 하나의 단어가 내 삶을 너무도 명료하게 설명해주는 느낌에 나는 전율을 느꼈다. 내 삶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책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인 것도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인식을 통하여 경험, 감각, 의미가 끊임없이 재창조되어 영원히 그 속을 유영할 수 있는 프루스트적 삶. 나는 삶을 나의 기준 속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데서 가장 큰 동력을 얻는다.


사람들의 눈동자와 영혼 속에서 읽은 진실의 파편, 인간의 육체가 그리는 선의 아름다움,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 극단적인 솔직함, 물 위에 떠 있을 때의 감각, 어두운 숲 속에서 조용히 사색하기, 눈 내린 밤의 차가운 강물, 락스타가 된 기분으로 기타 치기, 애정과 호의를 보내는 인간들의 따뜻함에 지나치게 감동하기, 몸의 감각을 하나 하나 느끼며 운동하기, 지금 이렇게 앉아, 부드러운 키보드의 감각을 즐기고, 단어들을 하나하나 가볍게 어루만지며 글을 써내려가기.


저녁 노을을 반사하는 피렌체의 아름다운 성당 앞에서, 넋을 놓고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매료되어 우두커니 언제까지고 서 있었던 날이 있었다. 나는 나의 삶이 그런 식으로 흘러가기를 바란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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