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 없는 사랑, 그리고 살아갈 만큼의 명료함

by Sundance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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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삶의 꽤 오래 기간 동안 세상과 자아에 적용해 온 가장 큰 법칙은 기브 앤 테이크였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고, 내가 원하거나 받는 만큼 혹은 그 이상을 꼭 돌려 줘야하고, 조건 없는 애정과 호의는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심지어 기대와 소망에도 그에 걸맞는 책임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그런 규율. 표면적으로는 차갑게 들리지만 실제로 이 법칙은 내가 세상과 또는 다른 사람들과 상호 존중 하에 깊게 교류하는 데, 자잘한 변명 없이 내 자아에 대한 단단한 자긍심을 쌓아올리는 데 큰 도움을 주어왔었다.


여전히 나는 어느 정도 이 법칙을 준수하고, 어떠한 수준에서는 계속해서 그럴 것 같다. 그러나 최근의 경험과 성찰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된 된 약간(?)의 변용은 세상은 자연스럽게 기브 앤 테이크이지만, 개인이 이 논리를 행동에 적용하거나 이 논리에 따라 삶을 계산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어짜피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도 있고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도 있다면, 내가 실제로 무언가를 주고 받을 때(특히 줄 때) 이를 생각할 필요 자체가 없다. 세상의 순리가 자연스럽게 계산을 해 줄 테니까.


나는 사실 꽤 오랫동안 이 '계산하는 느낌'에 강한 갑갑함과 환멸을 느껴 왔었다. 그저 원하는대로 느끼고 감사하고 즐기고 슬퍼하며 살면 안되는 걸까. 그건 무책임한 걸까. 자유의 추구와 삶에 대한 강한 책임감은 내 삶을 지지해주는 가장 단단한 기둥이자 어떤 면에서는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거대한 흐름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 둘 사이에 크진 않아도 꽤나 아름답고 견고한 다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인생과 세상을 들여다 보면, 사실 결과라는 것은 개인이 전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어떠한 일을 하면 어떠한 결과가 온다는 일반적인 법칙과 '확률'이 있지만, 그것은 어느 순간에도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결과라는 것에 내가 크게 관여할 이유는 전혀 없어진다. 다만 나는 내가 통제, 조율, 혹은 노력할 수 있는 것, 세상에 대한 태도와 나의 계산 없는 행동에 무한한 책임을 진다. 그리고 사실 나에게는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 자체가 그 자체로서 목적을 다한 것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결과들은 자연스럽게 보너스가 된다. 인생은 책임을 지는 행동의 연속이고, 그로 인하여(혹은 그로 인하지 않고) 따라 오는 결과들은 계산 없이 즐길 수 있는 보너스 스테이지다. 그것을 인정하고 나면, 무한하고 달콤한 해방감이 찾아온다.


이는 물론 모든 것을 명료하게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내 인생을 단단하게 지탱해 나가는 데 있어서 바라는 것 단 한 가지는 살아갈 만큼의 명료함이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이 깨달음이 나에게 살아가고도 남을 만큼의, 넘쳐 흐르는 명료함과 평화, 긍지와 따뜻함을 가져다 준다.


추신: 사실 조건 없는 사랑과 애정에 대한 글을 쓰려고 시작했는데 실제의 글은 좀 더 전반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나중에 이 주제에 집중된 글을 다시 써야겠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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