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 꾸준함, 성실과 효율에 대하여

by Sundance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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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득 꾸준함도 요령의 한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사실인가? 의문이 들어서 요령의 뜻을 검색해봤다.


요령 (要領)은 ‘일의 중요한 점이나 줄거리’를 의미하는 한자어로, 사전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나 요점”으로 정의됩니다. 이는 주로 업무나 학습, 일상생활에서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요령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형성되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는 실용적인 지혜를 의미합니다. 때로는 부정적인 의미로 ‘편법’이나 ‘꼼수’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개념입니다. 직장 생활에서 요령은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요령 뜻'을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결과)



그렇다면 꽤나 들어맞는 말이다. 이전에 '요령은 지루하고 고행은 관능적이다'(대충 비슷한 워딩)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는 요령을 편법이라는 의미로 썼었는데, 요령의 의미를 위와 같이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꾸준함, 성실함은 요령이 될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어떠한 일을 꾸준히 성실하게 해내는 것은 사실상 만족감과 자부심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거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는 것 만큼 성공과 만족의 확률을 확실하게 높여주는 것도 없다. 어느 정도는 사기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저 꾸준히 얼마 간의 시간과 관심만 투자하면 된다니.


물론 끝없이 단순화하기엔 무리가 있다. 의지의 문제, 에너지의 문제, 피로의 문제, 우선순위의 문제, 기대와 속도의 문제 등 '문제가 되는 것들'의 가능성을 파고 들어가자면 끝도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문제들은 실제로 문제가 될 때 까지는 문제가 아니다. 그저 문제의 가능성일 뿐. 그리고 문제가 현실로 드러났을 때 그것은 더이상 막연한 걱정이나 문제가 아닌 해결의 대상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우리는 항상 어떠한 행동 또는 태도를 취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매번 놀랍다고 느끼는 것은, 변명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이 과업들을 직면할 때 거의 언제나 고통이 아닌 단단한 행복감, 어느 정도의 즐거움이 솟아오른다는 것이다. 사실 나에게는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청소를 하고 하는 일상의 유지를 위한 활동들이 책을 읽고, 기타를 연습하고, 영화를 보고 하는 취미 활동들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글쓰기를 포함한 이 모든 다양한 활동들은 나의 삶의 한 양상이고, 내 삶은 내가 가치있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 나에게 즐거움과 깊이, 보람과 성취감을 주는 것들을 향한 특정한 방향성이 있는 꾸준하고 묵묵한 추구이자 실천의 발현이다.


물론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에 나 역시 항상 흔들린다. 대부분의 활동들은 시작하고 나서는 훨씬 수월해지지만 시작하기 직전 문지방을 나서는 그 마지막 걸음이 가장 어렵다. 또한 이제는 무엇을 할까 생각하는 것, 그 막연함과 모호함이 가치 있는 활동들의 자연스러운 실천을 막는 가장 큰 장벽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을 조금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구축하고 설계하는 것이 매우 큰 효율을 가져다 주며, 사실 이 시스템을 구축하는 활동 자체가 나에게 매우 큰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취미가 되었다. 나중에 이에 대해 따로 자세히 쓸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세상은 내가 굳이 문제를 만들어 내지 않아도 예상치 못한 기쁨과 슬픔의 모험으로 가득차 있다. 내가 이처럼 내 삶을 단순하고, 견고하고, 투명하게 유지할 때, 나는 그 모든 인간사의 파도를 훨씬 맑은 눈동자와 영혼으로 맞이할 수 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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