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영화관에서 사탄탱고라는 영화를 봤다. 7시간이 조금 넘는 헝가리 흑백영화이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 속에 들어가서 존재하며 그 공기와 흙의 냄새와 질감을 그대로 들이마시고, 그 시간과 걸음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느낌.
그리고 옅은 무아경 속에서 내가 품고 있었던 목표의 가면을 쓴 덧없는 강박에 대해 생각했다.
이번 년도에 나는 하나의 투박하지만 나에게는 꽤나 달성 가능한 목표를 하나 세웠다.
"2025년에 좋은 영화만 골라서 100편 보기."
나에게 '좋은' 영화의 기준은 꽤 명확하다. 킬링타임용이 아니고, 존재론적이고, 독창적이고, 예술적이고, 두뇌, 감각, 영혼 중에 적어도 하나는 강렬하게 자극하고, 아름다우며 하나의 작품으로서 '경험할' 가치가 있는 영화. 값싼 감상이 아닌 존재의 진실로 인간을 움직이는 영화. 자신의 취향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의 큰 장점중에 하나는 시간 낭비와 실패가 적다는 것이다.
12월에 접어드는 지금까지 총 88편을 봤고, 남은 휴일에 부지런히 영화를 본다면 또 못 달성할것도 없지만,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7시간의 영화, 그리고 또 내일 보기로 되어있는 5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것은 꽤나 비효율적인 일이다. 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혹자는 그럼 단편영화로 채우면 되지 않느냐 했는데, 이것이 갑자기 나의 근본적인 사고 체계를 건드렸다.
대체 나는 왜 이 100이라는 숫자에 왜 집착하고 있는거지?
나는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의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잉여 행동 또는 나의 진실한 존재로부터의 회피라고 생각한다. 물론 100이라는 숫자는 초반의 추친력을 얻는데는 분명히 도움이 되었지만, 이제는 스스로에게 부과한 옅은 족쇄가 되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스스로가 세운 상아탑을 파괴하기 위하여 그냥 여기에 미완의 리스트를 올려버리고, 그 후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기로 했다! 99에서 끝나든 101에서 끝나든, 이미 과정 자체를 즐기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일 좋았던 영화들: Fanny and Alexander, The Double Life of Veronique, Nostalgia
제일 좋았던 감독: Ingmar Bergman (나의 '최애' 영화감독이다!)
제일 인상깊었던 경험들: 영국 독립영화관에서 Pink Floyd:Live at Pompeii를 첫 열에서 혼자 본 것. 반지의제왕 감독판 3편을 영화관에서 11시간 넘도록 마라톤 형식으로 본 것. 또 다른 영화관에서 7
시간짜리 Satantango. 내 취향에 맞춰서 독특한 컨셉의 영화클럽을 창설하고 잘 맞는 친구들을 초대한 것.
(Fyi. 나는 기록용으로 Letterboxd라는 앱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