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견물생심 : 개가 물면 생각보다 심하게 아프다

25년 7월 5일 저녁 9시

by 마법수달

아들과 10분 동안 무엇이든 이야기하기를 시작한 지 이틀째다. 사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 중 하나는 아들이 학교나 학원에서 배워 온 내용 중에서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부분을 알려줘서 어렵게 배운 내용을 날려먹지 않게 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래서 이야기의 시작을 학교나 학원에서 무엇을 배웠니? 뭐가 어려웠니? 물어보고 싶은 거 없니?로 시작하게 된다. 거창하게 "지금부터는 아빠와 아들의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부자의 정을 돈독히 하는 밀도 있는 10분 소통의 시간이에요"라고 포장하고 싶은 마음도 힘도 없다. 그냥 지르고 보는 거지 뭐. 자, 시작!




< 36계 줄행랑 하면 그건 직무유기 >


나 : 오늘은 무슨 이야기해 볼까? 학원에서 뭘 배웠을까?


아들 : 국어 학원에서 조선시대 고문을 배우는데 옛날 한글이랑 한자 같은 거 엄청 많이 나오더라고요. 요즘은 안 쓰는 말들도 많고요. 사자성어나 한자, 이런 거 꼭 외워야 돼요?


나 : 외우면 좋지. 사자성어도 옛날부터 전해지는 이야기잖아. 어떤 거 알아?


아들 : 견물생심! 견은 뭐지? 개 견자 아니에요?


나 : 개 견자 아니고 볼 견자야.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긴다는 뜻이지.


아들 : 아하, 그거였구나. 일석이조도 알아요! 영어로는 One stone, two birds!


나 : 맞아.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는다는 뜻이지.


아들 : 일석이조! 그리고 직무유기는요?


나 : 그건 사자성어는 아니고, ‘할 일을 안 함’이라는 뜻이야.


아들 : 그럼, 새옹지마는요?


나 : 이야, 제법 멋진 사자성어도 아네? 인생은 늘 변한다는 뜻이지. 나쁜 일이 좋은 일로, 좋은 일이 또 나쁜 일로 바뀌기도 하니까. 어제 내가 가지고 있던 말이 도망갔는데 오늘은 그 말이 없어서 덕분에 살아남았다 이런 이야기였던 거 같아.


아들 : 도망이라니깐 36계 줄행랑! 이것도 사자성어 아니에요?


나 : 이건 사자성어는 아닌 거 같은데. 손자병법이라고 하는 옛날 중국 전략서에서 나온 말이야. 줄행랑은 36가지 계략 중에서 어떤 계략도 통하지 않으면 도망치라는 마지막 전략이지.


아들 : 아하, 진짜 전략적이네.


< 한자, 꼭 배워야 할까? 꼭 외워야 할까? >


아들 : 36계의 계도 한자죠? 한자는 꼭 외워야 돼요? 국어 시험 말고는 잘 안 쓰잖아요.


나 : 사실 한자 몰라도 살 수 있어. 하지만 많이 알면 단어를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예전엔 신문도 다 한자로 썼을 정도니까.


아들 : 아니, 전혀 상상이 안 돼요. 한자를 섞은 신문이 있었다고요? 한자 없이 한글만 쓴 신문도 있긴 했죠?


나 : 맞아. 한겨레신문만 한글만 써서 한자 세대한테 욕도 먹었지.


아들 : 헛갈리는 단어 있어요. 여행은 한자예요? 책임은요?


나 : 여행은 여(갈 여) 행(다닐 행), 책임은 책(맡을 책) 임(맡길 임). 한자를 알면 자연스럽게 뜻을 알아낼 수 있긴 하지.


나 : 예를 들면 ‘달걀’은 우리말, ‘계란’은 한자어야.


아들 : 알 란 할 때 그 란이에요?


나 : 맞아. 수정란 할 때 그 란.


아들 : 그러면 국어 시간에 그거 좀 잘 나눠서 가르쳐주면 좋겠네요. 우리말, 외래어, 한자 이런 식으로.


나: 그렇게 한자를 배우고 나면 알게 되는 단어 수가 엄청 늘어날걸? 또 일본어나 중국어 배울 때도 편해. 걔네들도 한자를 많이 쓰거든.


아들 : 한자는 한글 이전부터 있었던 거잖아요? 그러면 한글 없었을 때는 한자 단어만 가지고 말한 거예요?


나 : 옛날에도 말은 있었지만 글자는 한자만 있었지. 그 말을 온전히 소리 나는 대로 쓸 수 있는 글자를 세종대왕이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만들고 용비어천가로 소개했지.


아들 : 아하, 그 시대의 사람들도 우리처럼 말은 한 건데 그걸 쓸 글자가 없었다는 거죠?


나 : 그렇지, 그리고 한자로만 쓰던 글자를 하나둘씩 한글로 소리 나는 대로 옮기기 시작했지. 우리가 쓰는 단어 중에 한자에서 온 단어들이 상당히 많아.


< 언어는 어떻게 배워야 할까? >


나: 그래서 한자를 배우고 나면 알게 되는 단어 수가 엄청 늘어날걸? 동아시아에서 한자가 그렇고 유럽에서는 라틴어가 그렇지.


아들: 라틴어는 누가 써요? 아, 미사 볼 때 보니깐 신부님들이 쓰는 것 같던데.


나: 맞아, 바티칸에서는 공식 언어지. 그리고 유럽 상류층 사람들이 한자처럼 사용해. 영어 잘하려고 라틴어를 배우는 사람도 있어. 단어의 뿌리를 알 수 있으니까.


아들: 라틴어 많이 어려워요? 한자는 진짜 너무 배우기 힘들던데.


나: 라틴어는 물건도 성별이 있어. 남성형, 여성형 따로 있어. 단어 외울 게 많지.


아들: 왜 물건에 성별이 있어야 하는지 잘 상상이 안 돼요. 그럼 언어는 어떻게 배우는 게 제일 좋아요?


나: 언어는 느낌으로 외워야 해. "Open the door"를 "문을 열어라"로 해석하지 않고 그냥 문을 보면서 “오픈 더 도어”라고 떠오르게 하는 거지. 해석 없이 통째로 익히는 거야. 그게 진짜 언어 공부야.


아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영어 같은 걸 배우게 하는 거네요? 학원에서는 맨날 해석하기 한 바닥 이런 것만 시키는데 사실은 해석 안 하고 알아듣는 게 더 좋은 거네요.


나: 맞아. 많이 듣고 말하면서 몸에 익혀서 한국말이 생각나기 전에 영어로 먼저 생각나는 게 진짜야. 문법은 나중 문제고, 노래처럼 익숙하고 몸에 익게 만드는 게 중요하지.




수학보다 영어와 언어를 좋아하는 아들과 언어 이야기를 했더니 목이 아프도록 말해버렸다. 오늘의 대화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살짝 GPT 씨에게 물어보니


• 사자성어는 한자 기반이라, 단어 이해에 도움이 된다.

• 한자와 고유어의 구분을 알면 국어가 쉬워진다.

• 언어는 해석보다 통째로 익히는 게 더 효과적이다.

• 문법은 결과일 뿐, 진짜 언어는 ‘익숙함’에서 나온다.


아, 진짜 꿈보다 해몽이다. 멋들어지게 정리해 줬구나. 오히려 이걸 아들에게 오늘의 교훈 4줄 요약이라고 보여주고 하고 싶다. 하지만 오늘 내가 찾은 교훈은 오늘도 10분했구나, 내일도 10분도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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