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7월 6일 저녁 10시 40분
오늘은 오랜만에 가족끼리 영화관에서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을 봤다. 그리고 저녁에 아들과 10분 대화를 <새롭게 시작>했다.
요즘은 저녁이 되기 전에 오늘은 무슨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가야 하나가 하나의 숙제가 됐다. 그리고 오늘 영화를 본 것은 소재를 찾던 나에게 너무나도 럭키비키 한 것이었다.
참고로 스포 아닌 스포가 일부 담겨 있을 수도 있으니 영화를 앞으로 보실 분이라면 양해 부탁드린다.
< 쥬라기 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나 : 지금부터 10분, 오늘 본 쥬라기 월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그전에 오늘 한 일을 달력에 적어봐. 아니, 그 달력 말고! 거기다가 오늘 하루 한 가지 정도만 적으면 돼. 일기처럼 따로 쓰라고는 안 할게.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매일매일 하나씩만 적어도 그게 원래 일기야.
아들 : 네에ㅔㅔ
나 : 자,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볼까? 오늘 영화 어땠어? 뭐가 제일 좋았어?
아들: 음… 쥬라기 시리즈를 많이 본 건 아닌데, 방송에서 봤던 장면들이랑 연결돼서 재밌었어요. 등장인물도 괜찮았고요.
나: 등장인물? 누가 괜찮았는데?
아들: 그냥 누구 한 명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서사가 좀 잘 쌓인 느낌이었어요.
나: 그 가족들 얘기는 어땠어? 좀 뜬금없지 않았니?
아들: 음, 맞아요. 좀 뜬금없었어요. 처음에는 덩치 큰 공룡 세 마리 피 뽑아서 돈 벌려고 하던 얘기였는데, 갑자기 가족이 나오고, 또 갑자기 흑인 캐릭터가 동생을 구해주고. 그러더니 갑자기 배 타고 끝나잖아요. 흐름이 이상했어요
나: 앞부분에선 돈 벌려던 사람이 갑자기 사람 구하러 다니다니 말이지. 그 인물의 목적이 갑자기 바뀐 느낌이지?
아들: 네, 좀 이상했어요.
나: 공룡은 어땠어?
아들: 공룡은 좋았는데요, 징그러운 애들도 있었어요. 합성된 공룡들은 좀 덜 ‘주라기’ 같았어요. 야생 공룡 같지 않고, 생김새가 이상하고 징그러웠어요. 이름은 모르겠는데, 덩치도 너무 크고 인형처럼 생긴 것도 많아서요.
나: 어떤 공룡이 제일 징그러웠는데?
아들: 이름은 기억 안 나요. 근데 엄청 큰 애요. 익룡 같기도 한데 날지는 않고요. 마지막에 슈퍼마켓에 나오던 애일 수도 있어요. 턱 밑이 볼록한 애요.
나: 걔는 아마도 벨로시랩터랑 익룡을 합성한 설정일 거야. 근데 좀 억지스러운 모습이어서 재미가 떨어지더라.
아들: 네. 진짜 공룡을 더 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안 나왔어요.
나: 공룡 이름 뭐뭐 알아?
아들: 티라노사우루스, 브라키오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모사사우루스요.
나: 모사사우루스 원래 알고 있었어?
아들: 아니요. 오늘 영화 보고 처음 알아서 안다고 했어요.
<가족 없이 진행되었으면?>
나: 만약에 그 영화에서 가족이 안 나왔으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됐을 것 같아?
아들: 음, 원정대가 공룡 채집하러 갔다가 동료들 잃고, 결국 해답을 찾으면서 모두를 위한 방법을 찾아서 마무리하는 이야기로 갔을 것 같아요.
나: 아무도 안 죽는 버전?
아들: 그래도 희생은 나왔겠죠. 공룡한테 잡아먹히는 사람은 나왔을 것 같아요.
나: 근데 그런 스토리는 지금 영화에서 가족만 뺀 거 아니냐?
아들: 아하, 그렇네요. 거의 비슷하긴 해요.
나: 그렇지. 가족 이야기 없으면 러닝타임이 1시간 반밖에 안 될 거야. 그러니까 좀 이상해도 가족 얘기로 채운 거지.
아들: 그냥 가족을 엑스트라처럼 잠깐만 등장시키는 건 어땠을까요?
나: 나도 처음엔 그렇게 될 줄 알았어. 배 침몰하고 끝나나 했는데, 끝까지 살아남더라. 미국 영화 특징 알지? 애는 절대 안 죽어.
아들: 가족은 다 살아남고, 과학자 팀은 거의 다 죽고, 맞죠?
나: 그렇지. 사실 흥미로운 이야기를 생각하고 본다기보다는 공룡과 경치를 큰 화면으로 보는 재미로 보는 영화라고 생각하니깐 그래도 만족스럽긴 해.
아들 : 저도 재미있있었어요.
<‘아몬드’는 왜 유명할까?>
나 : 요즘 읽으라고 빌려준 아몬드는 어때?
아들: 네, 읽고 있어요.
나: 웃는 거 보니까 아직 많이 못 읽었네. 앞에 시작 부분만 조금 읽은 거지? 아몬드가 왜 유명한 책인지 알고 있어?
아들: 그건 몰라요.
나: 검색해서 찾아봤을 거 아니야?
아들: 기억이 잘 안 나요.
나: 오늘은 그런데 둘 다 누워서 이야기해서 그런지 계속 하품 나오고 좀 많이 피곤하네. 다음에는 눕지 말아야겠다.
아들: 네, 그래야겠어요. 저도 지금은 피곤해요. 내일 이야기해요.
이야기가 끝나고 나니 뭔가 결론도 교훈도 없다. 부산사람이 먹는 원조 평양냉면 같은 기분이다.
익숙해져야 한다. 모든 대화가 다 결론이 나고 교훈을 가질 수는 없다. 그저 오늘은 함께 본 영화에 대한 느낌을 나눈 시간을 가진 것을 보람으로 삼아야겠다.
아들과 티키타카 딱 10분, 그래도 은근히 괜찮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