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 서C Feb 21. 2016

2016. 네 번째 책

스토너

                              

스토너(STONER) / 존 윌리엄스 / 김승욱 / 엘에이치코리아


1.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줄거리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스토너란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열아홉 살에 농과대학에 입학해, 문학에 매료되어 영문학도가 되어, 학문에 정진한 결과 그 학교에서 너무도 평범한 조교수가 되었다. 주변의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책과 씨름하는 것을 즐겼고, 정치적 야망이나 사회적 관계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결혼은 평범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고, 사랑했던 여인과 한 번의 외도가 있었다. 그리고 암투병을 하다 65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2. 

어라, 이렇게 재미없고 평범한 스토리의 소설이 있을 수 있나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자극적이지도 않고 놀라운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닌, 정말 평범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책 속에 담겨 있어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지극히 평범한 스토너란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읽은 것이지요. 영웅 이야기도 없고, 치열하게 삶과 사회에 고뇌하는 인물도 나오지 않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책을 덮었을 때 참을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단 말입니다. 마음이 저릿하고, 왠지 옆의 사람들과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고 글을 써서 정리해두고 싶은 표현의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멋지고 우아한 소설이지요.


3. 

감동의 층위가 있겠습니까마는, 신파나, 강렬한 반전이 이루어지는 감동보다 더한 감동은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발견하는 감동이 아닐까 합니다. 평범함을 따라가다 어느새 삶을 관조하며 인생이 그냥 그러하다는, 더할 것도 없고 덜 것도 없는 딱 흘러가는 그 상태를 발견했을 때 느끼는 깨달음에서 오는 감동이지요. 위대하지도 않은 한 인물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같이 살아왔다는 묘한 동질감에서 오는 감정의 공유와 스토너가 마지막에 꺼내는 삶에 대한 질문과 성찰은 마음을 이상하게 평온하게 만들어주고 있어요. 마치 내 이야기처럼 느껴져요. 내가 딱 스토너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비록 누군가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결국 기억마저도 사라져버릴 그런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나를 내가 바라보면 한없이 감동으로 다가올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거기에서 오는 감정은 나 아니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어떤 무엇. 이 책에서 느낀 감동이 그런 것들이 아닐까 해요. 


4.

그렇습니다. 이 책은 다이내믹한 서사와 변화무쌍한 인물 간의 갈등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건조한 책이 될 것도 같아요. 더 무엇인가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꾸역꾸역 읽는 독자는 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미리 패스하는 게 좋을 지도요. 그런데 인생이 가끔씩 텁텁하다고 느끼거나 비록 행복한 주변 환경 속에 있더라도 가끔씩 근원적인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이 책이 확 들어올 거라고 믿어요. 그 사람들에게는 사는 모습이 스토너와 달라도 내 이야기라 느끼며 읽게 되는 책이라고 여길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나 또한 가끔씩 삶이 혼자라고 느낄 때 주변 환경에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묵묵히 나만의 인생의 앞길을 걷고 싶을 때 다시 펼쳐 볼 것 같은, 마법이 깃들어 있는 있는 책이라고 여겼거든요.


 5. 

마지막 장에서 스토너가 삶을 소진하고 죽음을 준비하면서 반복적으로 독백하며 물어봅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고요. 스토너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며 읽는 나 역시 이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습니다. 인생을 다 살고 난 다음 죽음의 문턱에서 마치 내가 나 자신에게 던질 것 같은 질문인 것 같아 마음이 아리고 또 얼얼했거든요. '넌 무엇을 기대했나.' 먼 훗날 미래의 내가 스스로 '무엇을 기대하며 인생을 살아왔니'라고 물어볼 것 같은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나에게 하고 있는 듯한 이 말. 그래서 역설적으로 지금의 행복과 불행이 함께하는 내 삶에 겸손해지게 됩니다. 행운에 너무 확 달아오르거나, 불운에 차갑게 식고 괴로워하는 것은 언제든지 바뀌는 순간적인 감정일  거거든요. 지금 자신의 모습을 편하게 바라보고, 긍정하며 묵묵히 인생을 사는 거라는 걸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움베르트 에코가 '문학은 죽는 방법까지 가르쳐준다'고 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아름다웠던 책이라고 말하고 싶은 올해 네 번째 책,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