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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서C Sep 30. 2015

내일을 위한 시간

선택의 자유와 선택의 윤리를 우리에게  묻다

1. 수업 진도를 많이 나간 듯하고, 수업이 무료해질 오후 시간이 되면 우리 반 아이들에게 가끔씩 선택지를 줬다. ' 너희에게 특별히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어.  첫 번째는 읽고 싶은 책을 가져다 읽는 거고 두 번째는 수업을  계속하는 거야.'  뻔한 선택지였겠지. 열이면 아홉(한 명쯤은 고지식한 애가 꼭 있다!)은 수업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독서가 그리 매력적이게 느껴지지 않음에도 책 읽기를 선택한다. 결국 내 생각대로 수업 진도를 조절하고 독서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들은 선택했다고 믿었지만 권력을 가지고 있는 나는 교실상황을 내 입맛에 맞게 조정했고 의도했다. 


내일을 위한 시간 / 다르덴 형제 / 2015

2. 복직을 앞둔 산드라는 회사 동료들이 그녀와 일하는 대신 보너스를 받기로 선택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러나 그 선택이 회유와 압력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판단한 산드라는 재투표를 요청하고 16명의 동료를 찾아가 설득하지만 쉽지 않다. 영화에서 산드라는 자신을 선택해주라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지만 동료들의 반응과 선택은 서로 다 다르다. 서로 다른 처지와 서로 다른 목적으로 '선택받아야'하는 자와 '선택해야'하는 자, 둘 사이에 일어나는 팽팽한 긴장감은 90여분의 영화 속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과연 동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그리고 그 결과를 산드라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3. 영화를 보면서 끊임없이 머릿속에 맴돌았던 것은 '선택'이라는 단어였다. '동료로서의 산드라'와 '보너스', 둘 중 하나를 그들은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여기에서 의구심이 생긴다. 그들 앞에 놓인 선택지는 단지 그것 밖에 없는 것일까. 그들이 선택해야 한다고 믿는 그 상황은 제대로 이루어진 것일까. 강요된 선택의 문제점을 지적한 켄트 그린필드는 「마음대로 고르세요」(푸른 숲,2012)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개의 경우, 선택이라는 미사여구를 내 세우면 권력을 손에 쥔 사람에게 이득이 돌아간다. 이게 바로 힘 있는 자들이 떠벌리는 미사여구다. '사람은 자기가 한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면, 힘 있는 자들에겐 득이 되지만 힘없는 자들은 대개 상처를 입는다. 선택은 이미 만들어진 테두리이고, 그 안에서 사회 정의, 시민 자유, 경제적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운동은 거부당한다. 이런 운동에 반대하는 자들이 사람들의 기존 행동을 가리켜 선택을 대변하는 행위라고 못 박을 수 있기 때문이다."(p44)


4. 그들에게 놓인 선택지 자체가 잘못되었다. 둘 중에 하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 여기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그 상황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우리 반을 권력을 지닌 조정자로서 선택지를 제시했던 건 지극히 의도적이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을 통해서 나는 원하는 결론으로 끌고 갔다. 우리 아이들은  선택했다고 믿었고 선택에 책임을 지려고 하지만 그 선택은 이미 내가 만들어낸 테두리 속에 있는 뻔한 결과물이었다. 힘 있는 권력자가 놓아둔 선택지 프레임의 결과는 뻔하다. '산드라'와 '보너스'중 선택을 내세운 결과물도 뻔하다. 그렇다면 그 뻔한 결과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5. 영화는 산드라의 일련의 투쟁을 보여주면서 이러한 갈등 속에 우리를 놓아 둔다.  그리고 갈등의 과정 속에서 우리 스스로 선택지를 던져버려야만 선택이 진정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 던져버린 선택지를 채우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동료들의 연대임을 이야기한다. 다행히 치열하게 싸운 산드라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지나칠 무렵 이런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계약이 만료된 계약직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복직하게 할 것이라는 사장의 선택지를 통쾌하게 걷어차버리는 것이다. 대신 그녀의 그 자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동료들의 숭고한 연대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영화 내내 우울증에 시달렸던 산드라는 회사를 나오며 처음으로 남편에게 말한다.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라고 말이다. 엔딩 장면의 그녀의 뒷모습은 그래서 밝고 위풍당당하며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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