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격화의 대가

규격화의 기대보상은 충분한가

by 시간의 옆면

우리사회는 전 지구를 통틀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규격화에 진심인 사회다.


학교라는 12년 과정을 통해 사람들을 최대한 균일하고 균질하게 만드려고 노력하고


그 이후에는 사회라고하는 보이지 않은(때로는 보이는) 울타리와 몽둥이를 통해


우리를 '이상하지 않고', '특이하지 않은' 기존 체제에 잘 적응하는 인간으로 만들어간다.




시선 자체가 못과 망치인 사회


해외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미국, 유럽, 동남아에서도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서로 자연스럽게 웃는다.


그다지 자주 눈이 마주치지는 않지만, 어째뜬 눈이 맞주치게 되면 그냥 서로의 존재와 호의를 확인하는 정도의 의미로 눈웃음을 짓는다.


헌데 우리나라에서는 눈이 마주쳤다고 웃으면 뭔가 어색하다.

최소 특이한 사람에서 최대 경찰이 출동하는 상황이 생긴다.


즉, 우리의 시선은 상대의 존재를 확인하고 서로 악의 없음을 드러내고 인간 존재끼리의 행운을 빌어주는 시선이 아니다.


우리의 시선은 상대의 상태를 평가하고 수준을 판단하며 규격화에 성공한 존재인지 실패한 존재인지,

성공하였다면 그 규격화의 피라미드 상 어느정도에 위치하는지를 가늠하는 시선이다.



규격화의 보상이 나름 수긍할 만한 사회


온 국민이 이 규격화를 받아들인 것은 일종의 사회계약이었다.


독재자에 의해 강압된 방식이었지만 그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그 방식은 결코 지금까지 유지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면한 과제인 '경제 성장' 과 '남한 수호' 를 위해서 온 국민이 그 폭력적이기까지 한

규격화에 동의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 규격화에 대한 보상을 충분하게 제공했다.


모든 구성원이 국가라는 엔진속의 각 부품으로 기능하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그 대가로 경제는 성장하였고, 부와 안정이 분배되었다.


사회가 시키는 일이 나의 개성을 억누르고, 나의 욕망을 제한하였지만

그 대가로 보다 큰 물질적인 보상와 안정이 뒤따랐던 것이다.



규격화의 보상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은 사회

지금 우리 사회는 이제 더 이상 규격화에 성공한 인간에 대하여 그가 만족할 만한 충분한 보상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규격화에는 그 규격화의 주체가 존재하고 이유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 규격화를 이끄는 주체는 규격화된 구성원에게 적절한 동기부여와 보상을 제공하며 규격화된 그 시스템을 유지시킨다.


헌데 지금은 규격화의 잔재는 남아있는데 그 규격화의 주체는 사라진 상태다. 목적도 불분명한 제약과 관습만 남아 사회를 떠돌며 중구난방으로 구성원을 공격하고 있다.


초중고를 성실히 다니고 좋은 대학을 나와도 50세는 커녕 40세까지도 안정적이고 여유있는 물질적 보상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묻는다. 누구를 위한 규격화인가.

그에 대한 대답이 아직 우리사회에는 준비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그렇다면 규격화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개인화인가? 각자도생인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사회 협력 모델일까?


정책과 정의를 말하기 전에, 사회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먼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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