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흔히 보편복지를 추구하는 지역으로 인식된다.
그에 반면 미국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며 성공과 실패 모두 개인 능력의 결과로 인식한다.
유럽은 사회 구성원으로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계급간 연대를 통한 계급투쟁의 방법을 선택했다. 이는 상대적으로 계급이동 보다 계급연대를 통한 권리 확대가 더 용이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오래된 봉건제-농노 체제 그리고 귀족 문화는 사회적 계급의 고착화를 가져왔고
이는 시민의식의 성장과 함께 혁명이라는 방식 등을 통해 계급 붕괴 보다는 계급간 분배 변경을 이루어왔다.
반면 미국은 비슷한 인식구조를 경험해 온 유럽인들이 이주해 건설한 국가이지만
그곳에서 토지와 부의 분배는 과거의 영광과는 무관했다.
프론티어 정신을 갖고 스스로의 미래를 개척해간 이들이 새로운 상층 계급을 형성해갔다.
그리고 현명한 사회계약을 통해 그 계급이동의 통로를 최대한 보장하고 장려하는 방식으로 국가의 성장동력을 설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낙오자들은 국가가 보살피기보다는 중교와 복지재단에 의존함으로서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들어가며 공동체의 운영 원리를 세웠다.
그렇게 유럽과 미국은 각자의 경제성장 동력과 공동체 운영원리를 통해 나름의 안정과 성장을 구축해가고 있다.
물론 두 방식 모두 엄청난 부작용이 있고, 그 해결을 위해 노력중이지만 쉽지는 않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은 각자가 중심적인 기조가 있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철학이 있다.
그에 따라, 실행이 문제이지 방향성이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헌데, 한국사회는 조금 다르다.
미국식 계급이동의 서사가 신화처럼 자리잡은 동시에, 유럽식 보편복지의 서사도 전설처럼 의식안에 퍼져있다.
계급이동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계급보호와 연대가 약해질 수 밖에 없고, 보편복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계급간 연대와 공동체 성장 논리가 우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표면적으로 평등화된 사회에서 미국식 자본주의를 발전 모델로 삼고 계급이동을 사회의 성장 동력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땅은 오래도록 중앙집권의 왕조와 유교식 사회체제가 지배해왔던 곳으로 사람들의 깊은 내면에는 개인의 성공 신화 못지 않게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국가라는 의식체계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개천에서 용나는 계급이동의 개인성공 신화 못지 않게, 국가에 의한 보살핌, 민족의식, 다 같이 잘살자는 공동체 의식과 연대의식이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후자의 의식이 좌파 지식인들에 의해 유럽에서 의도적으로 이식된 경향이 있지만 그 논리가 한국 국민들에게 쉽게 흡수된 배경에는 우리 안에 자리잡은 '작은 빌게이츠', '작은 정주영' 못지 않게 '작은 세종대왕', '작은 이순신' 의 지분도 상당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 모든 '작은' 의 집합체가 '작은 박정희' 일까도 싶다.
한국사회의 역동성 추구와 배금주의를 고려할 때 개인의 성공신화 모델도 버리기는 아깝고 버려지지도 않을 것 같다. 관건은 이것을 더 건강하게 추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해체를 막고 고유의 공동체 의식을 가져가는 것의 장점도 무시할 수 없이 크기에 지속가능한 건강한 사회보장 또한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