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라이멀 피어(스포있음)

Primal Fear. 믿음 위에 축조된 사회는 안전한가

by 시간의 옆면

법정과 성당은 무엇이 다른가.

진실을 추적하는 곳일까 믿음을 전파하는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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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이 신부님을 통해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곳이었다면,

법정은 재판을 통해 체제의 말씀을 전하는 곳이다.

재판은 종교 만큼이나 그 역사가 긴 의식이다.


종교가 인간과 자연, 인간 내면의 분쟁에 대해 주로 그 해답을 구하는 권위였다면,

재판은 인간간의 분쟁에 대해 주로 그 해답을 구하는 권위였다.


과거 신의 말씀을 듣고 전하기 위해서는 권위와 장막이 필요했다면,

현대 세계에서 체제의 말씀을 듣고 전하기 위해서는 권위와 더불어 합의된 규칙과 함께 누구나 승복할 수 있는 외관이 필요하다.


권위의 말씀을 통한 교통정리는 어느 사회나 필요한 법이다. 합리주의의 결과로서 더 이상 사람들이 신의 말씀을 따르지 않게 되고, 개인 각자의 권리가 강화되자 사회는 새로운 교통정리 방법을 고안해 낸다. 그것이 현재 모습인 법률에 근거한 재판이다. 하지만 재판은 완전할 수 없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도 없다. 그래서 법정은 여전히 신성함을 필요로 하게 된다.



영화는 법과 재판의 한계를 논하지 않는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법과 정의 그리고 인간을 믿고 자신의 힘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정의로운 사람들이다.


실력과 인정이 있고, 정의를 위해 약자의 편에도 설줄 아는 변호사가 있고,

그에 맞서는 검사 또한 사회 정의를 믿고 죄가 있는 자라면 그가 약자든 강자든 가리지 않고 도망가지 않는다.

판사 역시 공정한 재판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며, 의사 또한 자신의 사명을 다해 자신의 진료의견을 표명한다.


겉으로면 보면 이들 모두는 정의와 진실을 위해 복무하고 사명을 다해 이 재판을 이끌어 간다.


더 근원적인 fear 를 다룬다.


영화의 주인공인 두 변호사와 검사는 치열하게 다투는 듯하지만 법정 밖에서는 사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전 연인이었다.)

도시의 주교가 무참히 살해당한 심각한 살인 사건을 다루지만 법정이 아닌 외부의 장소에서 만날때면 농담반 진담반의 신경전과 함께 여유를 잃지 않는 웃음과 친근함을 보이고 심지어 고백과 거절 등 사적인 감정을 여과없이 표현한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을 건듯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은 직업상의 역할극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기고 지고 설령 직장을 잘리고 명예를 잃더라도 그것으로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둘다 승리가 절박하지만 살해당한 주교나 살인범으로 몰린 용의자만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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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위선자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다. 권력에 맞서 위험도 무릅쓰고 진실과 정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진짜 진실보다는 진실처럼 보여지는 것에 어느 순간 의탁해 버렸다.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의 편안함과 안전함. 그리고 그것이 깨어질때의 불안과 공포

그것이 primal fear 일까.


모두가 나름의 진심을 다한 결과, 재판에서 애런은 정신병이 인정되고 무죄가 선고된다.

그것이 진실이어서가 아니라 현대 사회가 갖추어 놓은 '말씀 프로세스' 안에서 그것이 특별한 하자 없이

'진실' 로 승인되었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주교의 추악한 진실을 폭로하는 역할을 두고 변호사와 검사는 신경전을 벌인다.

설령 그것이 진실이라할지라도 그것을 폭로하는 쪽은 불가피하게 대중의 원망과 미움을 받을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즉, 영화는 진실 못지 않게 그것을 믿는 이들이 받아들이는 감정과 태도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믿고 있던 것을 부정당하는 것은 인간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이고 불안과 공포이다.


그렇게 믿고 있는 것들로 쌓아올린 세계가 어쩌면 그것이 자신이라는 존재 그 자체일수도 있고, 혹은 그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 그 자체일수도 있다.

불가피하게 그 세계를 구축해가며 우리는 많은 순간 진실과 타협을 했다. 진실의 빈틈을 믿음과 추측, 바램으로 메우며 우리의 세계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종교와 법정은 큰 도우미이자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종교와 법정의 유해성을 논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충분히 유용하며 우리의 친구이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말씀이 항상 진실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고,

그 이유는 아마도 그 체제가 불완전해서라기보다는

믿고 싶은 것이 생기면 그것을 쉽게 믿어버리고 싶어지는 강력한 우리의 본성,

믿고 싶은 것을 부정당하고 싶어하지 않는 우리의 근원적인 불안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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