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예술을 죽이는가, 아니면 인간을 다시 묻는가

AI 와 대화해본 예술의 미래

by 시간의 옆면

사진 발명 이후의 회화, 그리고 AI 시대의 창작자에 대하여


1. ‘인간만이 할 수 있었던 것’이 사라진다.


한때 예술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고흐의 붓터치, 렘브란트의 명암, 미켈란젤로의 조각 하나하나에는 단순한 형상 그 이상의 감동이 있었다.

우리는 그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기술적 성취를 넘어, 그것을 완성하기까지의 고통과 시간, 그 사람 자체를 느꼈다. 그것은 감상이라기보다 경외였고, 기술이라기보다 숭고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다른 전환점 앞에 서 있다.

AI는 이미 인간을 능가하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몇 줄의 프롬프트, 수 초의 연산이면 고전과 현대, 추상과 리얼리즘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이 생성된다. 그것도 피로도, 집념도, 실수도 없이.

예전 예술의 감동은 바로 ‘그림 실력 + 기획력 + 반복된 실패와 극복’의 총합이 인간의 서사로 응축된 결과였다면, 오늘날 우리는 기획만으로도 ‘완성된 결과물’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2. 사진의 발명은 회화를 죽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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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사진이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회화의 종말을 예언했다.

그러나 회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 회화는 복제의 의무에서 해방되었다.

사실적 재현은 사진에게 맡기고, 회화는 색채와 감정, 감각과 상징의 세계로 확장되었다.

사진은 회화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회화의 본질을 다시 묻게 한 것이다.

그로 인해 인상주의가 태어났고, 추상표현주의가 폭발했고, 개념미술과 설치미술은 예술의 지평을 사회와 철학, 정치로까지 확장시켰다.

지금의 AI 또한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왜, 무엇을, 어떻게 창작하는가?”



3. 기술의 사라짐은 기획의 부상을 부른다.


AI가 회화·디자인·일러스트레이션의 영역을 넘보는 지금, 예술가는 더 이상 ‘그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기술은 민주화되었고, 누구나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중요한 건, “그 그림을 왜 그렸고, 그 작품을 왜 만들었는가?”


“그 형상을 선택하고, 그 구성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맥락과 의도'다.

예술의 감동은 더 이상 ‘실력의 감탄’이 아니라, ‘사유의 감전’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전시장에 들여놓았을 때 이미 암시된 흐름이었다.

그 순간부터 예술은 손이 아닌, 관념과 판단의 영역으로 이탈했고,

작품보다 작가의 의도가 더 중요한 시대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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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는 다시 ‘숭고함’의 자격을 묻고 있다.


그렇다면 AI가 만든 이미지, 인간이 만든 프롬프트 기반의 창작은 우리에게 감동과 숭고함을 줄 수 있는가?

정답은 ‘예’이지만, 그 감동의 형태는 달라졌다.

- 예전의 감동: “인간이 이것을 해냈다니.” (기술과 노력의 숭고함)

- 지금의 감동: “이 개념을 이렇게 풀다니.” (철학과 구조의 숭고함)

즉, 우리는 ‘창작의 도구’가 아닌 ‘창작의 의미’로 감동을 이동시킨다.

인간의 역할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질문과 개입, 통찰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5. AI가 남긴 질문은 단 하나다.


예술은 죽지 않는다. 단지 질문이 달라질 뿐이다.

이전의 질문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가?”였다면,

지금의 질문은 “당신이 그린 세계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다.

AI는 인간을 대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에게 더 높은 해석력과 기획력을 요구하며, 창작을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그러므로 지금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손의 기술이 아니라, 의미를 설계하는 두뇌와 감정의 시야 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AI조차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마지막 창작 능력 일지도 모른다.



6. 제너럴 AI 는 다를 것인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라 섵불리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과연 진정으로 '감정' 도 학습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감정을 흉내내는 것은 가능하다. 우리 인간도 종종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몸과 정신으로 부터 발현되어 나오는 그 순수한 신체작용으로서의 감정을

과연 감정이 없는 개체가 학습하여 배울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예술에서 기획력이 점점 중요해지고는 있지만 그 기획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단지 이성과 논리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양한 사안에 대해 어떠한 입장이라는 것을 갖게 되고 그 입장을 가지게 되는 과정은 단지 이성과 논리만 작용한 결과는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이제 걸어다니며 말하고, 인간과 뒤섞이며 정보를 수집하는 ai 가

어느 날 캔버스 앞에 앉아 직접 그림까지 그리는 날이 멀지 만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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