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받으려던 찰나에 전화는 끊기고 말았다. 계속 보니 끝번호가 익숙한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전화를 최대한 늦게 받으려고 우아함을 차리던 아까와는 다르게 재빨리 명함 수첩을 뒤졌다. 곧 나는 번호의 주인을 알아냈다. B&E 피부과 원장 이봉일.
그는 민정과 같은 건물에 있는 병원의 의사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우리 회사에서 출시된 아토피 연고를 알리러 갔을 때였다. 개업 초의 한산함 덕에 나는 얼마 기다리지도 않고,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회사에서 오신...아니 으대가 아파 오셨는데요??”
그는 영업사원이 여자라는 걸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그가 나를 응시하는 것보다 나의 그에 대한 응시에 더 몰입해있었다. 그가 입은 가운의 목덜미 부분은 살짝 접혀 있었고, 얼굴에는 수염이 불균일하게 깎여있었으며, 반곱슬 머리가 눈썹 아래까지 덮여있어 깔끔하지 못한 인상을 주었다. 이제껏 만난 의사들과는 다소 상반된 느낌의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한성제약 이현지라고 합니다.”
나는 명함을 내밀었지만 그는 뭔가 낯선 듯 나와 명함을 번갈아봤다 그러더니 그의 시선은 이내 문 밖에 있는 사람을 향했다. 이 병원의 공동 원장 배우철이었다. 봉일과는 다르게 멀끔하고 세련된 이미지였다.
“제가 지금 밥 무러 가는데... 용건만 간단히 합시다”
나는 책상 위에 새로 출시된 아토피 연고 한 박스를 올려놓고, 막 설명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우철이 들어오더니 내가 올려둔 박스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기존 제품과의 차별점 하나만 알려주세요.”
당시 고작 3개월의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면접관 앞에서 입사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지원자가 된 듯 긴장한 채 외워왔던 제품 소개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철은 말을 끊더니 성가신 표정으로 “뻔한... 그런 얘기는 나중에 들읍시다” 했다. 영업 사원들에게는 종종 있는 일이지만 적응은 쉽지 않은 시절의 일인지라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봉일은 우철을 힐끔거리더니 “밥 무면서 하입시다” 했다. 우철은 고개를 내젓더니 봉일에게 가자는 눈치를 주고선 앞장서 갔다. 정지된 채 서 있는 나와 어쩔 줄 몰라하며 그를 뒤따라가던 봉일을 뒤로하고 가던 우철은 잠시 후 되돌아오더니 나에게 “명함이나 달라”라고 했다.
나는 봉일과 우철과의 첫 만남을 되짚어보다가 잠이 들었다. 이후 나를 깨운 건 알람보다 먼저 울린 핸드폰 벨소리였다. 이른 아침의 전화를 받는 나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봉일이 전하는 수화기 너머의 사실은 짜증을 순식간에 전율로 바꿔놓았다.
우철이 살해되었다는 것. 뒤이은 정보는 더욱 놀라웠다. 민정이 유력한 용의자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