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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향지 Jan 28. 2021

모유수유로 만난 아이

딸 둘 엄마의 요리 컴플렉스_제1장 이토록 주관적인 요리실력

결혼하고 1년이 지난 어느 여름. 내 인생 최고의 경이로운 일이 발생했다. 3.34kg 맨몸뚱이의 낯선 여자 아이가 내게로 온 것이다. 세상을 처음 마주한 이 가녀린 존재는 온 힘을 다해 울어대는 것처럼 보였다. '저 아이는 울음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낯선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언뜻 생각될 뿐, 나는 그 울음의 정체를 또렷이 알 순 없었다. 내게서 나왔지만, 엄밀히 말하면 아이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였으니까.


의식보다 위대한 건 언제 어디서부터 온 지 모르는 오래된 본능인것 같았다. 이제 막 태어나 태지도 제거되지 않은 아이를 간호사는 내 가슴에 안겼다. 눈도 뜨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찾던 아이는 본능적으로 젖을 물더니 이내 울음을 그치고, 안정을 찾아갔다.  뒤로 이어진 모유수유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데 특효였다. 출산 후 분리된 엄마와 아이의 몸은 수유과정에서 비로소 이어지는 듯했다. 나는 2~4시간마다 성실하게 병원과 조리원 수유실에서 아이를 만났다.


모유수유의 장벽은 의외로 높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흔한 몸살 한 번 걸리지 않을 정도로 건강 체질임을 자부했던 내가 아이를 낳고 3일 만에 열이 났다. 출산 전 익히 들어왔던 '젖몸살'이 시작된 것이다. "양배추를 가져와달라"는 영문 모르는 주문을 한 아내가 이번에는 양배추 낱장을 가슴팍에 붙이는 날 것의 행위를 하자, 남편은 낯선 세계로 초대된 사람처럼 얼떨떨하게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때 우리 부부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가슴에 양배추를 붙이는 행위는 앞으로 전개될 육아가 몸과의 전쟁 임을 알리는 예고편이었다는 것을.


밤새 젖몸살에 시달린 나는 단단해진 젖을 아이에게 물렸다. 젖을 빨아주어 한번에 시원하게 통증이 제거됐으면 좋으련만, 가슴부터 자궁까지 지속적으로 찌르르한 통증만 계속됐을 뿐이었다. 신음소리라도 내고 싶은 강도였지만, 저마다 아이를 품고 이 숭고한 작업을 하는 이들로 가득 찬 수유실 안에서 '나만 아프다'라고 내지를 순 없는 노릇이었다. 각자 자신만의 소우주를 살뜰하게 챙겼고, 그 가운데 누군가는 급습하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고, 누군가이 고귀한 생명의 꿈틀거림에 도취되어 있는 듯했다.


그래도 가슴은 서서히 말랑거리면서 통증이 다소 나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아이는 오래 빨지 못했다. 모유를 충분히 먹지 않아 힘이 없는 것인지, 애초에 먹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는 것인지 잠깐 빨다가 자고, 잠깐 빨다가 자고... 수유자세를 교정해주러 수유실에 들른 모유수유 전문가는 젖을 물렸음에도 아이가 깨지 않고 자자 포기하고 다음을 약속했다. 하지만 아이는 다음 수유시간에도 잠을 잤다.     


출산 2주가 지나 집에 와서도 수유는 원활하지 못했다. 아이는 빨다가 배가 고픈지 울었고, 나는 집에 온 첫날부터 '혼합수유'를 하게 됐다. 나의 모유량은 극히 적어서 아이가 자는 1시간 동안 60~80ml가 나오면 그나마 선방한 셈이었다. 누군가는 아이가 직접 빨면 그의 몇 배가 나온다고 했고, 그러니 시시 때때리라고 했지만 나는 젖을 빨 때마다 젖이 모자라는 듯해 우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다.


아이는 '더 먹고 싶어 우는 걸까?' '너무 많이 먹여 우는 걸까?'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아 우는 걸까?' '빠는 것이 힘들어 우는 걸까?'라는 나의 궁금증에 속시원히 대답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나와 다른 존재의 마음읽기에 확신이 없었던 나는 유축한 모유량과 아이가 섭취한 모유의 양을 정확히 알아야 직성이 풀렸다. 직접 수유하기보다는 유축기를 이용해 아이가 먹는 모유의 양을 측정했다. 아이에게 젖을 물렸을 때 아이가 빨면 배고픈 것이고, 빨지 않으면 배부른 것이므로 모유량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른 채 젖을 물리는 엄마들과는 성격 자체가 달랐다.


나는 아이의 개별성이나 특수성을 알 길이 없어 책의 통계학적인 지식에 기댔다. 나는 아이의 적정 수유량이자 수유 목표를 평균 통계치를 참고삼아 160ml로 설정하고, 일정 시간 동안 어떻게 해서든 이 양만큼은 먹이기로 하고 실행에 옮겼다. 물론, 목표량에 매번 쉽게 도달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는 유동적인 존재였으니...


어른들은 저마다 '모유수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이와  산모의 건강뿐 아니라, 정서적 측면에서 모유의 우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는 것이었다. 친정엄마는 모유가 적은 딸에게 수유에 좋다는 아욱이며. 족발 등의 음식들을 해다 날랐다. 경험이 많던 엄마는 그야말로 모유수유전문가였다. 젖몸살로 자주 팅팅 붓는 가슴을 온찜질로 마사지해주고, 수유법을 가르쳤다.


그럼에도 유방의 수난은 계속됐다. 급기야 유두에서 피가 나고, 딱지가 앉고 유선염 증상이 나타났다. 나는 '이 혹독한 작업을 유지하는 것이 옳은가?' '극복한 필요가 있는 과정인가?' '그 과정이 미련한 것은 아닌가?'라며 모유수유를 지속시키는 것에 대한 지독한 회의가 들었다.



수유 초기 내 적은 모유량에 대해 "옛날 같으면 소박맞았어!"라고 놀리던 남편도 얼마간 그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더니 "모유를 그렇게까지 고집할 필요가 있냐"고 했다. 결국, 나는 출산 두 달만에 '완분'을 선택했다. 


완분 이후에도 수유에 대한 어려움은 계속됐다. 아이는 좀체 먹으려 하질 않았다. 분유를 160ml를 연이어 먹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성장이 순탄할 리 없었다. 포동포동하고 살집이 두터운 아기를 아기띠에 안고 주춤대며, 어깨가 아프다고 아우성치는 엄마들의 하소연은 차라리 행복에 겨운 투정 같아 보였다. 아기띠에 안긴 나의 아이는 내 품에 쏙 들어왔고, 캥거루처럼 나의 배주머니에 가뿐하게 안착한 작디작은 가녀린 존재일 뿐이었다.


출산 시 몸무게가 3.34kg면 평균보다 적은 몸무게는 아니지 않은가? 출산 2주 전까지 아이는 보통 아이보다 키와 몸무게 모두 2주가 빨랐다. 게다가 대한민국 평균 여성들보다 큰 키(167cm)였던 나는 출산 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유전적으로도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결과에 맞닥뜨렸다.


상위 60%의 키와 몸무게로 태어난 아이의 체격 성적표는 출생 후 석 달이 되자 30%, 1년이 되자 10%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잘 먹고 잘 크는 것이 거의 전부인 이맘때 아이들의 육아에서 엄마인 나는 "나는 제대로 키우고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에서 내내 자유롭지 못했다. 더불어 엄마로서의 나의 자존감도 추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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