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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향지 Dec 17. 2021

원점을 생각하다

어렸을 때, 위인전이나 현존하는 스타의 삶을 보면서 한 인간의 히스토리에 대해 매료된 적이 있다.

모든 걸 멋지게 해내고 그리고 멋지게 성장하는...

그래서 누군가에게 살아간다는 설렘을 주고 급기야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돌이켜보면 비록 내 40 평생 히스토리는 엉망진창일지언정, 그 히스토리에 대한 매혹은 내 삶에 일정 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 히스토리의 서사는 내 삶을 보다 가열하게 만들었고, 현재에 충실하게 만들었고, 늘 무언가를 꿈꾸는 인간으로 만들었으니까.

 

부정적 영향이 있긴 한데, 나의 히스토리는 진흙탕 같아서 누군가에게 별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자괴감 따위... 보통 사람이라면 꼭꼭 숨겨두게 될 히스토리(물론, 나는 나의 진흙탕 같은 히스토리도 성향상 꾹 누를 수 있는 사람은 못 된다. 망가지더라도 그조차도 떠벌려서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공감받길 바라는 욕망이 드글대니까..)지만, 나는 어떤 강박 때문인지 그 히스토리를 버려두지도 못하고, 잊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온전히 내뱉지도 못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사람에 따라 그 비중이 다를지 모르지만 현재에 있는 우리는 모두 과거를 살고 있다.

현재에 문제를 일으키는 관계들을 들여다보면 시발점은 과거의 어느 순간이란 얘기다.

물론, 당시에는 '매우 사소한 문제인데 뭐... 혹은 '별 문제가 안될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지나 보면

그때의 그 지나침이 얼마나 경솔한 것이었는지 알게 된다.

당시 제대로 소통했었더라면, 그래서 교정했었더라면...

상대와의 관계에서 미처 해결되지 못한 미궁의 것들이 누적되는 일,

타협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일이 쌓여만 가는 것,

그래서 나도 모르는 이유로 그 사람에게 분노하고, 염증 나게 되는 일.

모두 히스토리와 관련된 것이다.


부정적 히스토리가 양산하는 관계의 두려움 때문인지

나는 나를 잘 아는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결혼할 시기에 나를 백지상태로 보는 사람과 만나야지"했던 것 같다.

원점에서 시작할 수 있는 관계...

그건 어찌 보면 희망이니까.

긍정적 히스토리를 쌓아갈 수 있다는 희망.

기존보다 더 긍정적으로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는 희망.

그래서 세상에서 더욱 행복을 느낄 확률이 높아진다는 희망.  

'다른 사람은 나를 안 좋게 보지만 당신에게 나는 그렇게 안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은 나를 좋은 사람으로 알고 있어요! 맞아요. 나는 그런 사람이에요! '

'당신과의 원점에서의 만남은 나를 새로 태어나게 해요!'


어찌 보면 살아온 날들보다 살 날들이 더 많이 남았을 텐데

나는 나의 과거를 완전히 보듬을 그릇이 아직 안되고,

타인에게 이해시키거나 공감시키며 위로받는 건 포기 상태니...

요즘은 과거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원점을 생각하게 된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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