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소소하게 잔잔하게 차크닉으로...

(1) 궁평리 해수욕장

by 일향지

2020년 2월 말. 아이들 유치원에서 코로나 확산에 따른 지침으로 가정보육을 권하는 문자를 받았다. 처음엔 코로나의 종결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거나 회의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금방 끝날 것이란 기대감이 더 큰 상태였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것은 쉽사리 종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오랜 집 생활이 유쾌할 리가 없었다. 나는 어느덧 바깥 생활을 열렬히 지향하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하는 바깥 생활이 윤리적일 수가 없었다. 그보다 사람 많은 외부에서 장시간 활동하는 것이 안전성을 위협받는 상태였다.


와중에 차를 몰고 산으로 바다로 캠핑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아~ 저거야 말로 '슬기로운 바깥 생활'이로구나!" 캠핑은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곳, 바이러스에 전염될 가능성이 낮은 건물 외부의 활동이라 윤리성이나 안전성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나는 먼저 캠핑에 적합한 SUV를 알아봤다. 집에 세단 중형차가 있긴 했지만 캠핑용 차량으론 무리였고, 이 차를 주로 모는 깔끔쟁이 신랑은 캠핑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아니, 캠핑에서 일어나는 각종 번거로운 일들을 혐오하는 수준이었다. 그래, 됐다. 나는 8,6살 두 딸들과 씩씩하게 캠핑을 다니기로 했다. 트렁크 텐트는 자리가 넉넉지 못했으므로 넷보단 셋이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면서.


이후엔 같이 차박을 다닐 사람을 구해야했다. 세 식구만 가는 캠핑은 그간의 집안 환경을 외부로 바꾼 것에만 불과했으니까. 일행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큰 딸의 단짝 친구가족이 차박에 호의를 보였다. 다만 이들도 처음이었기에 차박을 실행하는 것보단 차크닉으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에서 조심스레 캠핑의 포문을 열어보기로 했다.


2021년 5월 19일. 1년 동안 벼르고 벼르던 차크닉이 실현되는 날이었다. 봄바람이 산들거리고 날도 제법 따뜻해서 차박에 제격이었다.

나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전날부터 준비한 짐들을 차에 싣고, 40여 킬로미터가 되는 길을 달렸다. 아이들은 한껏 들떠서 전날 스스로 싸둔 가방을 메며 흥얼댔다. 목적지까지의 여정은 길지 않았다. 오전 9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한 우리는 채 1시간도 되지 않아 캠핑 장소인 궁. 평. 리. 해. 수. 욕. 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무료 주차장엔 이미 자리가 없는 상황. 주차비 1만 원을 지불하고 간신히 유료주차장에 차를 댔지만 바다 쪽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행히 잠시 후 전날부터 와서 차박을 끝낸 차 두 대가 빠져나갔다. 나는 부리나케 나의 산타페 차량의 트렁크를 바다 쪽으로 대고 트렁크를 오픈했다. 바닷가를 바라보니 아이들은 한껏 신나서 모래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캠핑이 성공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기대에 부풀어 트렁크를 평탄화하고 나서 봄햇살이 제법 뜨겁다고 생각할 무렵, 때마침 얼음을 가져온 일행이 나의 텀블러에 얼음을 넣어 냉커피를 만들어 주었다. 일행과 나는 트렁크에 앉아서 모래 놀이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잠시 여유를 만끽했다.

캠핑 팁!
설겆이가 용이하지 않은 캠핑장에서 텀블러는 매우 유용하다. 나만의 텀블러는 커피잔이 되었다가 물 잔이 되었다가 술잔으로 변모한다.

때마침 해변에서 놀고 온 아이들이 햇볕을 피해 트렁크 안에서 간식을 먹겠다고 했다. 아이들의 발을 보니 모래 투성이었다. 근처에 씻을만한 곳이 여의치 않았던 곳이라 일행이 준비해 온 20리터짜리 휴대용 샤워기가 매우 유용했 다. 아이들은 물을 나눠 쓰며 시원하게 모래 알갱이들을 씻어 보냈다.

아이들은 트렁크에 앉아 정면에 보이는 바다를 보며 스낵을 먹었다. 생전 처음 느끼는 광경에 마음이 한껏 달아오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영감이 떠오른 듯 눈앞의 해변 그림을 여러 장 그렸다.

나는 그린 그림으로 가랜드를 만들어서 전시회 기분을 냈다. 모두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서 흥미를 보였다. 하늘거리며 날아가는 가랜드에 분위기도 덩달아 고조됐다.

서해의 갯벌은 여느 바다보다 아이들이 놀기에 더없이 즐거운 놀이공간이었다. 아이들은 진흙을 밟으며 갯벌의 생물들을 체험하며 즐거워했다.

캠핑 때의 메뉴로는 고기가 빠질 순 없다. 오후가 되자 지리산 흑돼지와 항정살이 큰 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익어갔다. 식사 이후엔 시원한 무알콜 맥주와 스낵, 과일을 차렸다. 집에서 준비해온 음식들을 해치우면서 알 수 없는 성취감이 생겨났다 어쩐 일인지 음식은 쉴 새 없이 들어갔고, 음식과 함께 우리는 사람 사는 얘기, 육아 얘기도 곁들였다. 거기에 음악을 들으며 힐링의 시간도 가졌다. 눈앞의 전경, 음식, 음악... 그야말로 오감이 충족되는 순간이었다.

캠핑 팁!
큰 프라이팬과 키친타월은 캠핑의 필수품. 고기 굽기뿐 아니라 다각도로 활용이 가능하다.

아이들도 체력 충전^^

식후 크로플 간식도 더없는 즐거움이었다.

해질 무렵, 특히 서해의 노을은 무척 아름다웠다.

아이들은 노을 속에서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던지면서 즐거워했는데,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아이들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그 때를 떠올리며 좀체 잊지 못하고 있다.

가볍게 시작한 첫 차박은 여러 행복한 기억을 남기며 마무리됐다. 일행은 다음 번엔 좀 더 제대로 된 캠핑을 하고 싶다며 잔뜩 흥이 올랐다. 당분간 캠핑용품을 찾느라 혈안이 될 것 같다. 다음엔 어디로 떠날까? 벌써부터 심장이 후끈 달아오른다.

<궁평리 해수욕장>
- 경기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