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말. 딱히 갈 데도 없는 토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일 뭐 할까?"를 생각하니 떠오르는 건 캠핑밖에 없었다. 먹을 것과 장비만 있으면 코로나 걱정 없이 쉽게 다녀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정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갑자기 몰아치듯 준비를 해야만 하는데서 오는 약간의 부담감 때문이었다. 나는 밀린 숙제를 하듯 밤 10시가 되어서야 결정을 내렸다. "그래, 가보자!"
나는 새벽배송으로 캠핑에 필요한 것들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부탄가스, 삼겹살, 햇반, 반찬, 야채, 과일 등등.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주문을 완료하고 시간을 확인하자 11시 마감 1분 전인 10시 59분(마치 이번 캠핑이 내내 아슬아슬하게 진행되리란 걸 암시하는 듯한 숫자다)이었다. 나는 주문을 하며 신랑에게 말했다. "내일 딱히 갈 데가 없네. 차박이나 가자! 내가 준비할게!" 딱히 갈만한 곳을 못찾은 신랑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해야할 것이 차박 장소 선정이었다. 캠핑 호황기라서 이미 웬만한 캠핑지는 다 자리가 찼다. 나는 저번의 성공했던 차박을 떠올리며, 바닷가 근처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경기도민이라 가까운 곳은 당연히 인천 부근이었는데, 그 주위에 괜찮은 곳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차박장소를 물색하다가 12시쯤 잠이 들었다.
설핏 잠이 깬 건 새벽 5시. 누군가의 블로그 후기에는 탄도항이 차박지로 괜찮다는 글이 게재되어 있었다. 거리도 가깝고, 바다도 보이고, 누에섬 관광과 갈매기, 갯벌체험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케이! 탄도항으로 결정!"
새벽 6시쯤 나는 짐을 부랴부랴 챙기기 시작했다. 예약되지 않는 차박 장소는 자리 선점이 중요했다. 나는 7시에 도착한 식재료를 언박싱하고, 8시쯤 나는 가족들을 깨워서 짐을 싣고, 아침밥을 먹이고, 차박 장소로 향했다. 장소는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717-5 제1주차장. 도착하니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미 빼곡히 들어선 주차장의 차들 사이로 간신이 차를 대고 우리는 누에섬으로 향했다. 오전인데, 햇빛이 왜 이리 강렬한지. 온 김에 갈 곳은 다 가봐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우리는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를 걸었다.
옆에는 장화를 신고 갯벌놀이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다소 깔끔하고 까칠한 딸들은 '저런걸 구태여 왜하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사실, 그건 내가 생각해도 오늘같이 불쾌지수가 높은 날에 썩 좋은 놀이는 아니었다.
아이들의 시선은 이내 갯벌 주위의 갈매기들에게 향했다. 근처에는 더위를 식혀줄 아이스크림과 갈매기들에게 줄 새우깡을 파는 마트가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서, 신랑이 더위로 인한 불쾌지수를 다스리는 동안 아이들과 나는 새우깡을 사서 갈매기들에게로 향했다.
갈매기들은 처음에는 몸을 피하더니 아이들이 새우깡을 던져주자 이내 와서 금새 다 먹어버렸다. 그 과정이 즐거웠는지 아이들은 새우깡을 자신들이 먹는 대신 갈매기에게 다 줘버렸는데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다음은 점심을 먹어야할 차례. 주차장에 차를 간신히 대고 온 터라 차박 풍경으로 적합한지 여부를 따질 겨를이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닷가가 펼쳐지리라는 기대와 달리, 앞에는 넓은 갯벌만이 펼쳐졌다. 우리 차 주변에는 여기저기 빈 병이 나뒹굴었고, 잡초가 무성했다. 게다가 바람이 왜 이리 부는지. 풍력발전을 한다고 할 때 이미 알아봐야했었다. 차박을 계획하고 왔지만 우리는 트렁크를 열어놓고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는 것은 포기했다. 앞의 풍경은 삭막하기 그지 없었다. 메마른 바닥에 돌덩이가 가득했다.
그때였다. "아이들 땀 흘리는 것 좀 봐."
우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난감해하자 옆 차 노인들이 보다 못해 '타프'를 빌려주었다. 아기들과 함께 있다는 점은 주변의 도움을 쉽게 얻는데 꽤 도움이 된다. 여전히 무심하게 내려쬐는 태양 아래에서 땀을 흘리던 아이들은 평소 소극적인 성격을 뒤로한 채 아이스박스에서 얼음팩을 꺼내 적극적으로 얼굴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우리는 서둘러 나뭇가지에 걸쳐 타프를 치는데 성공했다.
가장 큰 난관을 해결했으니 이제 가져온 것들만 세팅하면 된다. 그런데 탁자가 안보인다. 아무리 뒤져봐도 안보인다. 분명히 주차장까진 가지고 왔던 기억이 나는데 말이다. 신랑과 나는 일순 침묵했다. 서로 예민함과 날카로움이 극도에 달한 상태였다. 이 순간에 누가 조금만 서로를 잘못 건드리면 폭발할 것을 나는 안다. 나는 조용히 이웃에게 전화를 걸어 주차장에 탁자가 있는 지 여부를 확인했다. 다행히 탁자는 있었고, 나는 보관을 부탁한 채로 사태를 수습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우리에겐 간이 탁자가 있다는 것. 아이들은 간이 탁자에서 잠시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고, 독서록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캠핑 반대론자인 신랑은 여전히 잔뜩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더위가 인내심을 자극할 무렵, 나는 준비해 온 수박을 꺼내 식구들의 더위를 식히는 데 일조했다. 식구들은 차가운 수박을 먹으며 마음과 속을 달랬다. 우리는 별 말 없이도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알 수 있었다. 하나도 기쁘지 않으며, '도대체 이 더위에 여기까지 와서 왜이러고 있느냐?'는 생각 말이다.
즐거운 캠핑에 대한 체념과 더위로 인한 무상이 교차되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간이 탁자 위에서 고기를 구우려고 하는데, 바람이 어찌나부는지... 신랑은 한 구석에서 부르스타 케이스로 바람막이를 하고, 삼겹살을 구웠다. 그 와중에도 바람은 계속 불었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돌을 주워다가 날아갈만한 것들을 눌렀다. 모래바람도 살짝 일었으나 나는 모른척 했다.
이리도 날카로워져 침묵으로 계속된 피크닉이라니... 난 신랑에게 "고기 맛있겠다!"라며 동조를 구했으나 신랑은 아무 말이 없었다. 곤충과 벌레들이 돗자리 위로 수시로 출몰했다. 어쨌든 내가 오자고 한 것이니 이 상황에 대한 책임도 나에게 있을 것이다.
나는 이왕이면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캠핑은 이렇게 좀 더러운 것도 경험하고, 예외 상황도 경험하는게 재미야. 그러면서 환경 적응력도 길러지지. 실수나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여유로움도 생기고. 우리 애들처럼 소심한 애들은 특히 이런 걸 자주 경험해봐야 좋다니깐! 전망만 좋으면 애들에게 캠핑만한 교육이 없다고!"
급기야 신랑은 참던 화를 터뜨렸다. "아 씨! 이런 걸 왜 오자고 해서 고생만 시키고..."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나는 굴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캠핑 어때?"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의외의 반응을 했다. "재밌어! 다음에 또 오자!" 도대체 뭐가 재밌다는 걸까? 찌는 더위에 땀 흘리며 갯벌을 건너가던 것이? 모래 바람 흩날리는 곳에서 수박 먹던 것이? 벌레가 수시로 출몰하는 곳에서 고기 먹던 것이? 뭐가 재밌었는지 더 캐묻고 싶었지만, 신랑의 얼굴은 더 일그러져 갔기에 난 질문을 멈췄다.
아직도 아이들이 그때 왜 캠핑이 재밌다고 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지만 난 앞으로도 아이들과 캠핑을 가야할 또 하나의 명분을 마련하긴 했다. 그리고 이보다 캠핑 도구가 덜 갖춰지지 않는 한, 전망이 구리지 않는 한 아이들과의 캠핑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