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싸웠다고?... 그가 불멍을 도전하다!

(3) 다누리움 캠핑장

by 일향지

남편이 회사 동료들과 함께 캠핑장에 다녀오는 일이 발생했다. 바람이 차가운 날이었고, 장소는 근처도 아닌 차를 타고 2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평소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고 하던 그였고, 내가 가자는 캠핑은 귀찮다고 극구 뿌리치던 그였기에 나는 배신감마저 들었다.


그는 말했다. "거기는 내가 하지 않아도 후배가 알아서 다 세팅해놓는 곳이야. 난 몸만 가면 된다고!" 그의 말에 따르면 캠핑 마니아인 회사 후배는 차박에 필요한 온갖 도구들을 구비하고 다니며, 도착하자마자 혼자 철저히 차박 텐트부터 시작해 바비큐, 불멍 장비까지 완벽하게 세팅해놓는 캠핑 전문가였다.


그의 말을 수긍하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기분이 더 나빠질 것이고,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 나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기회를 놓칠세라 나는 바로 말했다. "애들이 이번 주말에 캠핑 가재! 내가 세팅할 테니 오빠는 따라만 와!"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고집 센 그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여전히 캠핑 초보인 나는 큰 걸 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에도 당일 캠핑이다. 텐트를 친다고 해도 추위를 피하는 용도가 될 것이 뻔했다. 그러나 작은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요즘같이 추운 날에 좋은 불멍. 나는 소형 불멍 화로대를 샀다. 4인 가족이 나란히 붙어 앉아 손을 쬐기 좋은 크기였다. 오로라 가루가 서비스였는데, 장작이 탈 때 넣으면 불꽃이 총천연 무지개색으로 살아나는 가루였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캠핑 날 아침, 둘째가 미열이 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내가 오전 6시부터 각종 캠핑 장비를 챙기는 동안 정오쯤 밀린 잠을 자고 일어난 남편이 둘째의 체온을 재보더니 "아침에 병원을 데려가지 않고 뭐했냐?"라고 성질을 냈다. 나는 열이 잔뜩 올라서 "지금까지 쳐자고 일어나서 무슨 말이 많냐?"라고 했다가 대참사가 벌어졌다. 남편은 말했다. "이 캠핑 가자고 한 건 너야. 난 가주는 거고!" 나도 지지 않았다. "그러면 때려치자! 가지마!" 흥이 올라야 할 캠핑 날에 전쟁이 났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싸움은 안중에도 없고, 캠핑을 취소하는 것에 잔뜩 화가 올라 난리부르스를 선보였다. 이미 친구들에게 캠핑을 간다고 자랑하고 난 뒤라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나 또한 준비해놓은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멘붕이 왔다. 어른부터 애들까지 우리 집안은 불과 몇 분 만에 난장판인 상태가 됐다.


이 혼돈을 정리하는 게 필요했다. 어쩔 수 없다고 느꼈는지 신랑은 마음을 식히고 돌아와 내가 챙겨놓은 짐들을 트렁크 안에 넣었다. 나도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도착한 곳은 용인 다누리움 캠핑장. 남동생이 예약했다가 사정이 생겨서 취소하는 바람에 우리가 덥석 문 곳이다. 캠핑장답게 여러 조건이 잘 갖춰있었다. 넓은 부지와 캠핑에 필요한 용품을 죄다 모아놓은 곳이 있었고, 카페와 식수대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차를 세웠다. 신랑은 말없이 트렁크에서 텐트를 꺼냈다. 아내가 캠핑을 다닌다니 신랑 후배가 준 거라며 내 차에 넣어둔 것인데, 우리 둘 중 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도 원터치 텐트만 쳐봤지 땅에 뭔갈 박는 류의 텐트는 처음이었다. 신랑과 나는 텐트 치는 법을 알 수가 없어 말없이 행동으로 각자 자기가 하는 게 맞다며 힘겨루기를 하기 시작했다.


짜증이 다시 치솟은 나는 텐트를 같이 치는 걸 관두고 탁자를 편 뒤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이미 시간은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3시를 향해가고 있었기에 나는 행동이 급해졌다. 내가 삼겹살을 굽는 사이, 신랑은 텐트 치기를 성공한 뒤 탁자로 왔다.


탁자 위의 점심은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그릇이 없어서 종이컵에 구운 삼겹살을 담거나 김치를 담았다. 아이들은 젓가락질에 익숙하지 않아 나와 남편이 지속적으로 신경을 쓰며 먹여줘야 했다. 라면을 먹이는 중 가져온 햇반을 물에 끓이는데 햇반의 밥이 좀체 익지 않았다. 게다가 라면과 김치가 맵다며 아이들이 징징대는데 마실 물이 떨어진 상황. 이미 인상이 구겨진 남편은 난장판의 광경을 보더니 인상을 있는 힘껏 구겼다. 표정으로만 본다면 폭발 직전. 그러나 이 와중에도 아이들은 연신 "너무 맛있다!" 추임새를 넣으며 웬일로 밥을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 밥을 허겁지겁 즐겁게 먹는 아이들을 보며, 남편의 구겨진 표정이 다소 펴지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고 마시멜로를 굽자 아이들의 흥은 달아올랐다. 캠핑까지 와서 부르스타에 굽는 건 아니지만, 준비해왔다고 해도 장작을 혼자 피우는 건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남편은 텐트 안에서 여전히 표정을 구기고 있었고, 아이들은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던 마시멜로를 크래커 속에 끼워서 쏜살같이 먹어치우고 있었다.


잠깐 생각할 틈이 주어진 사이, 나는 '날은 점점 더 추워지는데 이 자리에서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를 따져봤다. 이윽고 나는 대인배가 되기로 하고, 남편의 기분을 풀어주기로 결심했다. 사실 그리 미안하지도 않았지만 가족의 평화와 나의 마음의 안정을 위해 사과하며 수그린 것.


기분이 좀 풀어졌는지 남편은 평소라면 귀찮아할 것들을 연달아 조용히 하기 시작했다. 토치로 바람에 꺼져가는 불을 피우고 피우고... 꽤 많은 시도 끝에 불이 타올랐다.

오로라 가루를 넣자 아이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불꽃은 초록색으로 타올랐고, 불꽃 가루가 여기저기 흩날리며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았다. 핸드폰으로 잔잔한 포크송을 재생시켜 들으며 아이들과 부둥켜안고 체온을 나누니 아이들이 행복해했다. 남편도 기분이 보들 해졌는지 제법 다정한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고구마에 닭갈비까지 구워줬다.

어둠이 깊어졌고, 바람이 차가워졌다. 우리에겐 손전등이나 조명이 없었다. 화로대의 불빛이 없었다면 저녁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 난 불에 의존해 준비해 온 떡국 밀키트로 떡국을 끓였다. 2인분짜리였는데, 소식하는 우리 4인 식구에게 딱 맞는 양이었다. 우리는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다 먹었다.

짐을 정리하고 차에 탈 때 보니 둘째의 열이 내려있었다. 차가운 바람에 아이가 더 강해진 걸까? 그 바람이 아이의 열을 앗아가 버린 것일까? 아이의 즐거운 마음이 체온까지 정상으로 돌려버린 것일까? 캠핑을 오기 전의 답답하고 찝찝한 기분이 어느새 훌훌 털어진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본 캠핑장 풍경은 아름다웠다. 언젠가는 저 캠퍼들처럼 텐트를 노련히 치고, 조명을 켜고, 탁자 위에서 식사다운 식사를 할 수 있길 바라며 오늘을 되돌아봤다.


그리고 몇 가지 깨달음이 머리를 떠돌아 다녔다. 감정의 온도와 체온은 지속적으로 변하므로 변해가는 것 속에서 지나치게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는 것. 신랑 없이 아직 나 혼자만의 온전한 캠핑은 가능하지 않으니 서로를 배려하며 좀 더 상대의 도움을 얻어낼 것.ㅋ 엉성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엉망이 되는 것은 아니니 사소한 엉성함에 지나치게 과민할 필요는 없다것이다. 유동적이고 불온전한 인생뼛속 깊이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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