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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향지 Aug 03. 2022

"잘 먹네"라는 뼈아픈 말

딸 둘 엄마의 요리 콤플렉스_제3장 자식을 위한 요리, 나를 위한 요리

우리 아이들이 잘 먹는 삼각김밥. 아침에 몇 번 줬는데도 잘 먹어서 집에서 저렇게 해먹여봤다.

하루 세 끼 시달리는 좌절감. 하루 세 번 이상 나오는 한숨. 육아 얘길 하면 빼놓지 않고 나오는 먹이기 하소연. 내 가까운 육아 동료들은 나의 이러한 고충을 대강 알고 있다. 그리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시달린다. 이 이슈를 최대한 자제할까 하지만 엄마들이 모인 자리에서 빠지지가 않는다. 그리고 이 이슈가 한번 나오기 시작하면 나의 하소연은 봇물처럼 나온다. 그래서 이를 아는 들은 시달리지 않으려는지 육아에 있어 음식 대한 주제를 금기시하는 눈치다.

 먹이기 하소연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잘 안 먹는군요. 힘들겠어요." 좀 더 친한 사이라서 내 하소연에 살짝 지친 상태라면 "잘 먹는 걸 먹여!" "그냥 군것질 먹여. 난 안 먹으면 지칠 때까지 그냥 과자 줘!" 좀 더 지친 상태라면 "(더 맛있는 걸로) 그냥 사 먹여!" 하소연에 지긋지긋한 상태라면 반감과 의문을 갖는 듯하다. '과연 얼마나 안 먹길래? 잘 먹는데 못 먹이는 거 아냐?'


친한 친구의 가족들과 펜션 여행을 갔을 때다. 15개월쯤 되는 우리 첫째 딸과 친구 아들의 식성은 극도로 차이가 났다. 기차를 타기 전부터 5살, 3살인 그녀의 자녀들은 그녀가 간식으로 가져온 복숭아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간식으로 가져온 요플레와 치즈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우리 딸은 이유식은 물론 간식마저 제대로 먹는 법이 없었다. 펜션에는 이유식 다지기가 없어서 채소를 직접 삶아서 일일이 으깨는 작업을 거쳐서 이유식을 만들어야 했는데, 내가 더운 여름 비지땀을 흘리며 감자와 당근과 호박을 삶아 으깨어 만든 이유식은 고스란히 친구 자녀들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남의 자식이라도 잘 먹으니 다행이다 싶었지만, 상대적으로 식성이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 딸은 잘 먹지 않아 2박 3일 동안 대변도 보지 않았는데, 친구의 자녀들은 누는 족족 황금똥이었다. 내가 그 똥마저 부러워하자 친구는 여행 마지막 되는 날 쌓였던 화를 터뜨렸다. "야! 네 눈치 보느라 밥이나 제대로 먹고, 똥이나 제대로 싸겠냐?" 친구는 아이가 잘 안 먹는다는 나의 조바심과 하소연에 같이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더니 여행 마지막으로 함께 한 점심식사에서 딸아이가 몹시 굶주렸는지 웬일로 식사를 잘 하자, "잘 먹네! 잘 먹는구먼" 이러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폭발했다. "아이가 잘 먹는다"는 말은 "잘 주면 잘 먹는데 뭘 그리 성화냐?"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 말에 2박 3일 동안 그 과정을 주욱 지켜봤음에도 그동안 나의 먹이기 고충에 대한 공감은 하나도 없었다. 만약 '잘 먹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위안을 하려고 한 말이라면 이런 심정의 나에게 매우 터프했다.


한 번은 동네 언니에 대한 이야기다. 그 언니의 자녀들은 유달리 식성이 좋았다.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냉장고부터 열고, 집에 있는 맛 좋은 영양제를 살펴볼 정도였다. 그 언니의 아들과 우리 딸은 같은 나이였음에도 키는 10cm 이상 차이 났고, 몸무게도 10kg 이상 차이가 났다. 그 무렵의 나는 우리 집 새끼라도 못 먹으면, 다른 집 새끼라도 먹이는 것으로 어느 정도 보상을 얻고 있었다.  그 언니는 우리 딸과 비교되게 너무 많이 먹는 자기 아들이 미안한지 어느 날은 쌀 20kg 한 포대를 집으로 갖고 왔다.


그 언니에게도 나의 그런 하소연이 없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 언니는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종종 "야! 안 먹는 애들은 진짜 안 먹어! 너네 애들은 그 정도면 잘 먹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애들이 그나마 잘 먹는 음식은 김, 생선, 미역국, 가래떡, 고기였는데, 유독 그 언니 집에 가면 언니는 용케도 그 음식들을 차려줬다. 우리 집에도 그런 음식들을 먹일 때 옆에 있곤 해서 그나마 잘 먹는 모습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언니는 "나 아는 집은 안 먹는 애들한테 야채스틱을 주더라. 여행을 가서도 사 먹이지 않고 자기가 만든 음식을 주더라"라며 "아이가 잘 먹는 음식 위주로 센스 있게 줄 것"을 전했다. 그러면서 종종 우리 아이들이 음식을 먹을 때 "잘 먹네~"라며 추임새를 넣었다. 난 근데 왜 그 말이 "잘 먹이면 잘 먹지. 왜 못 먹겠냐?"라는 말로 들리는지.  나는 그 언니가 우리 아이들에게 "잘 먹네"라는 말을 할 때마다 "우리 애들 라면이랑 삼각김밥 잘 먹어요. 매번 이런 것만 줄 순 없잖아요. 그리고 미역국도 연이어 주면 질려해요"라는 변명을 기계처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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