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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향지 Jul 20. 2022

'키 성장 전쟁'을 치르는 어느 하루

딸 둘 엄마의 요리 콤플렉스_제2장 자기 위안적 선택


늦잠을 잤다. 아이들 유치원 보내기 20분 전이다. 아침 먹이기를 포기할까 잠깐 생각해지만 단념이 쉽지 않다. 간단한 메뉴를 생각해보지만 아침부터 빵이나 우유, 시리얼 따위를 아이들이 잘 먹을 리 없다. 나는 주방에 재빨리 가서 국을 데우고 냉장고에서 부랴부랴 반찬을 꺼낸다. 근데 이를 어쩌랴? 아이가 먹을 반찬이 없다. 나는 채 달궈지지도 않은 프라이팬에 계란을 깨서 올려놓고, 부랴부랴 잠이 덜 깬 아이들을 안고 식탁으로 데려온다. 징징대며 식탁에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선 밥을 먹을 기미가 안 보인다. 아이들이 깨기를 기다리며 밥 위에 계란 프라이와 가위로 자른 김을 놓고, 참기름과 간장을 두른다. 아이들은 여전히 졸린 눈치다. 이 상태에서 스스로 밥 먹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나는 1초간 생각한다. '대체 뭣이 중한데?' 나는 효율성을 선택하기로 한다. 오늘 같은 날은 세수도 이 닦기도 포기한다. 그보다 밥이 중하므로.


나는 우선 계란 프라이와 김과 참기름과 간장의 밀도가 높아보이는 곳을 한 숟가락 떠서 첫째에게 먹인다. 그러고 나서 미처 못 비빈 밥을 사정없이 비빈다. 첫째는 아직 씹고 있다. 나는 둘째에게 한 숟갈을 먹인다. 그리고 아이들의 옷을 가져와 첫째에게 입힌다. 첫째의 입이 멈추자마자 첫째에게 다시 한 숟갈을 먹이고 둘째에게 옷을 입힌다. 이어 둘째에게 한 숟갈을 먹이고, 첫째의 머리를 묶고, 다시 첫째에게 한 숟갈을 먹이고, 둘째의 머리를 묶고, 이어 둘째에게 한 숟갈을 먹이려는데  둘째가 "배 부르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시계를 보니 차량 탑승시간이다. 나는 씹으며 가면 될 거라 생각하고 한 입을 더 먹이려다가 고개를 내젓는 아이에게 "겨우 두 숟갈 먹고 안 먹겠다는 게 말이 돼?"라고 윽박지른다. 때마침 차량 선생님이 현관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타운하우스라 현관 바로 앞에 차량이 정지하는 구조) 아이들은 물 먹을 겨를도 없이 가방을 들고 부랴부랴 나간다. 어느새 주방에 온 신랑의 얼굴이 찡그려져 있다. "쫌 아침부터 그러지 좀 마! 일찍 좀 일어나든지!"  나는 알고 있다. 신랑의 짜증은 나의 게으름보다는 '아이가 세 숟갈도 안 먹는다'라는 사실 때문임을.


식구들이 집을 떠난 뒤,  어제 낮 소아과에서 재본 키를 떠올린다. 첫째는 6%, 둘째는 8%다. 첫째보다 많이 먹는다고 생각하는 둘째는 몸무게만 더 나갈 뿐, 그맘때의 첫째의 키와 비슷하다. 그 이하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나는 키가 우리 큰딸보다 살짝 작은 아이의 엄마와 한참을 통화했다. 육아는 엄마 성격대로 간다던데, 그 엄마는 그리 애써서 키우지 않는다. 아이의 2차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고. 최근에 성장판 자극기를 구입하고, 유명 키성장클리닉에 예약을 걸어둔 내가 유별나 보인다는 반응이다. 나는 혹시나 도움이 될까해서 유명 칼슘제와 영양제, 유산균을 추천해줬지만 "운동만큼 좋은 게 없다"며 되려 나에게 '밖에서 뛰어놀기'를 추천해줬다.


나라는 사람은 방법이란 방법은 다 시도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혹여나 생길 지 모르는 후회라는 감정이 썩 유쾌하진 않기 때문이다. 아니, 두렵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나는 내가 이제껏 시도해보지 않은 또 하나의 방법을 시도해본다. 비록 확률이 낮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혹시나 해서 권유해 본 태권도 학원은 역시나 싫단다. 태권도장 앞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온 것만 두번째다. 나는 세번째 간 태권도장에서 줄넘기 수업을 듣는 큰 딸의 단짝 친구를 발견하고 너무 반가웠다. 아이가 드디어 태권도장에서 줄넘기를 하게 됐으므로.


태권도장에서 나오는 우루루 나오는 또래 아이들 중에 우리 딸이 머리 하나는 작은 것 같다. 어떤 아이가 지나가며 말한다. "너 키 작다!" 나는 "작으면 어때서?"라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고 싶었지만 '작으면 어때서?'가 아니라는 걸 안다. 나는 현실도 부정하고 화도 못내고 속에서 꿈틀대는 것을 억누르며 그 아이에게 말했다. "안작아!" 딸아이는 나의 그 말에 더욱 고개를 숙인다. 내 머릿속엔 명절 때만 되면 키를 비교해보자며 달려드는 자기보다 큰 사촌동생까지 스쳐간다.  


집에 돌아와 도서관에서 키성장과 관련해 빌린 책들을 살펴본다. 그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책 하나를 두고두고 볼 생각으로 온라인으로 구입한다. 그 책 내용 중 중요한 내용은 포스트잇에다가 써서 한참을 외워보지만 그 중 아이들이 잘 먹는 음식은 몇 개가 안된다. 나는 일전에 먹였던 한약이 잠시나마 식욕을 돋우는데 효과가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내곤 지인이 추천해준 집에서 2시간이나 떨어진 한의원을 주말에 가기로 예약한다.  


수면시간이 늦은 것이 또 하나의 복병이었다. 이론대로라면 9시~10시 사이가 성장호르몬이 나오는 이상적인 취침시간이라지만 아이의 취침시간은 11시를 넘을 때가 많았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아이들은 '노는 게 젤 좋아! 동생아 (언니야) 모여라!'의 모드로 노는 것을 멈출 줄을 몰랐다. 잠자리에 누우면 잠이 들기까지 1시간여가 걸렸다. 아이들이 막 잠이 든 무렵, 친한 큰딸의 유치원 친구 엄마에게 톡을 보냈더니 이런 답변이 왔다. '우리 애들은 아직 한참이야. 놀고 있다.' 그러고보니 그 아이들은 키가 90%다. 나는 허무함과 피로감이 섞인 채 잠이 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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