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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향지 Aug 19. 2022

나의 맛있는 것은 너의 짐이 되고

딸 둘 엄마의 요리 콤플렉스_제3장 자식을 위한 요리, 나를 위한 요리

매년 정월대보름 때마다 친정 엄마는 나물에 팥밥을 가져다주신다. 주신 음식에는 우리 가족 한해의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있다. 친정 엄마는 이 음식을 하기 위해 전날부터 팥과 나물을 삶는다. 그러나 비극은 우리 집에는 그 메뉴를 좋아하기는커녕 먹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정월대보름날 저녁엔 으레 엄마가 주신 팥밥을 아이들에게 먹이는데 그 과정이 힘들다. 밥도 유쾌하게 먹는 아이들이 아닌데, 팥밥이라니... 일반 반찬도 먹을까 말까인데, 아이들이 잘 안 먹는 나물 반찬이라니... 엄마가 해온 팥밥의 양은 적지 않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식탁에 올려보는데, 그걸 본 신랑은 내가 한 줄 알고 "먹지도 않는 밥을 왜 했냐?"라고 인상을 쓴다.


엄마가 주신 정성 생각하니 감사해서 내가 꾸역꾸역 먹기는 하는데,  끝내 다 못 먹을 때가 많다. 게다가 다량의 나물은 또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지... 미처 버릴 수 없어 비벼도 먹다가, 계란 스크램블에 섞어서도 먹다가 맛을 내기 위해 간장과 참기름으로 섞어 주먹밥을 만들어 먹다가 냉장고에서도 견디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리면 짜증이 안 날 수 없다. 왜 엄마는 잘 먹지도 않는 음식을 매년 에너지 소비하면서 저리 많은 양으로 갖다 주시는지. 엄마는 "(부담갖지 말고) 먹지 않을 거면 버려라"라며 쿨한 듯 말하지만, 난 버리는 입장에서 쿨할 수가 없다.

게다가 크론병이 있어서 나물 못 먹는 동생(물론, 그 집 식구들이라도 먹으라고 한다지만)에게까지 저렇게 갖다 주신다니 나는 이 지점에서 화가 난다. 대체 저 많은 나물을 어찌 먹어야 할지, 안 먹으면 미안해지는 마음은 어쩌라고. 그런데도 정월대보름이 뭐라고 매년 저렇게 힘들게 해 오시는지. 왜 평생을 사람한테 못 맞추고, 미신이나 오랜 전통만 믿으시는지. 내가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에 대해선 관심 밖이고, 자신이 먹이고 싶은 음식에만 평생을 신경 쓰면서 사시는지. 나와 엄마가 자주 부딪히는 이유 중 하나다.


음식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이 주는 것들이 늘 맛이 있거나 상대의 취향에 맞아서 그 사람에게 기분 좋은 영양분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아쉽게도 그렇지 못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 받은 사람은 소화조차 안 될 것 같은 음식들을 보면서 '이걸 버려 말아?'와 같은 번거로운 고민을 수차례 할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안 받을 수도 없는 이 짐이 되는 것들을 왜 줬느냐?"며 구시렁댈지도 모른다.


음식으로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하기엔 자신과 상대는 참 많이 다르고, 그걸 취하는 당시의 여러 상황과 복잡한 심리가 존재한다. 그리하여 주는 건 참 다양한 고려를 필요로 한다. 양은 얼마나 줘야 적당한지, 그 사람 입맛과 취향은 어떻고, 기분은 어떤지, 비주얼은 그 사람 구미를 당길만한 것인지, 내용물은 냉장고에 넣고 나서도 맛있게 다시 먹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인지 등등.


대개는 그렇지 않겠지만 '나의 맛있는 것'은 때론 '너의 맛없는 것' 혹은 '짐 되는 것'이 될 때가 있다. 다음번엔 '너를 위한 ' 정말 맛있는 것을 만들어야지 했지만, 는 이번에도 정말 맛없고 짐 되는 것을 버린다. 결국, 너를 위한 나의 마음은 너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나, 라는 씁쓸한 마음으로 이젠 그만 줘야지 하다가도 그러나, 인간은 또 얼마나 미련한지 '다음번엔 정말 더 잘 만들어서 줄 수 있을 거야'하고 다시 희망을 품고 시도해보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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