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B
나는 약국으로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이의 말을 떠올리며 엘리베이터 벽에 붙여있는 입점 병원들을 둘러보았지만, 피부과는 B&E 피부과가 유일했다. 문이 열리니 식사를 하러가는 우철과 봉일이 앞에 서 있었다. 우철은 나를 보더니 밥 생각이 없어졌다며, 봉일에게 먹고 오라는 눈짓을 보냈다. 난 모욕을 당한 듯했지만, 한 달새 영업인의 비굴함이 몸에 붙었는지 이전과는 다른 천연덕스러움으로 민정에게 주려고 카페에서 갓 사온 커피를 우철에게 전달하곤 봉일에게 물었다.
“식사 같이 하실까요? 1층에 괜찮은 카페 있던데...”
“좋지예. 밥은 같이 지불은 각각”
카운터 직원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아까 그 노천에 있는 곳으로 자리를 안내했다. 봉일은 메뉴판에서 좀처럼 메뉴를 고르지 못했다.
“여기 베스트가 스파게티네요.”
“마. 그걸로 하입시더.”
봉일은 못마땅한 듯 혀를 내두르더니 말했다.
“그래도 사람은 밥을 말아묵어야 기운이 나는데, 밀가루에 기름 쪼매 발라가 기운이 나겠슴니꺼?”
직원이 가고 나자 이내 어색함이 다가왔다.
대화가 없는 상태에서 아까 아이와 여자가 있던 자리를 보고나니 나는 이내 궁금증이 밀려왔다.
“우리 회사에서 결혼한 분들에게 좋은 약이 있어서...실례지만, 결혼은 하셨어요?”
“아이고 하하. 저는 미혼. 솔로”
“그럼, 우철 원장님인가보네요..”
“네? 머라꼬요?”
“아니, 우철 원장님은 결혼하셨을 것 같아서...”
“그 친구도 아직 미혼”
“배 원장님은 솔로는 아니실 것 같아요.”
“왜 저는 솔로 같은교?”
“아니 아까 직접 솔로라고 말씀하셨잖아요.”
“흠흠... 제가 뭐 일이 많아 가꼬. 학회 준비다 뭐다 마 신경이 곤두서가. 좋다는 약 얘기나 한번 들어봅시다.”
나는 반응이 좋아 어느덧 회사 사은품이 되어 버린 발기부전제를 설명했다. 비아그라가 병원 처방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약이 되면서 제약업계는 최근 몇 년간 부작용 없는 발기부전 치료제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약의 효능에 대해 과장한 후 강조했다.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최초로 약국처방이 가능한 약으로 식약청 승인 받은 거에요.”
“벌건 대낮에 할 말은... 결혼하셨나보네요.”
“아닌데요.”
“흠흠. 요새 서울 사람들은 참 ...흠흠. 하여간 일 열심히 하시네요.”
“저 서울사람 아니에요. 혹시 어디 출신이세요? 지는 부산 출신이어가꼬예”
“와. 세상 좁다. 동네 사람이네. 동네사람.”
지연으로 연결된 약 영업은 성공이었고, 나는 우철과 봉일에 대한 몇 가지 사적인 사실들을 듣게 됐다. 내가 꽤 젊은 나이에 개업을 하셨다고 치켜세웠더니 그는 우철의 약혼녀 아버지가 국내 Top3의 대학병원 병원장이라는 것을 은연 중에 털어놨다. 우철과의 친분에 대해 묻자, 우철이 자신의 고향친구이며 대학동문이라는 점도 밝혔다.
봉일은 우철의 자랑을 떠들기 시작했다. 그가 보기와는 다르게 정도 많고, 순정파라고 했다. 시골뜨기에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자신이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큰 피부과를 경영하게 된 것은 진솔하게 살아온 우철이 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대화 말미에 자신이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다며 난감해했지만, 우철에 대한 그의 애정만큼은 확실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