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아는 사람B

by 일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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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민정을 그녀의 약국에서 처음 만난 건 봉일과 우철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 날과 같았다. 처음 영업하러 간 우철의 거만한 태도에 잔뜩 기분이 상해 피로회복제를 마시려고 1층 약국을 들렀을 때였다. 약국에는 건조한 표정의 민정만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민정에게 아는 척을 하려고 하는 순간,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스트레스 없애는 음료 하나 주세요.”

“스트레스에는 비타민 B1이 좋아요. 비타 500 드릴게요.”

나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은 채 민정은 여전히 사무적이었다.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주세요.”

민정은 그제야 나를 쳐다보곤 웃었다. 그 웃음은 순도 100퍼센트의 반가움은 아니었다. 표정을 읽는 기계가 있다면 아마 이렇게 해석했을 것 같다. 당황스러움 40%, 반가움 20%, 불쾌감 10%, 어색함 10%, 놀라움 20%. 나를 침입자로 여겼을까? 나는 민정에게서 불쾌감보다는 반가움을 더 많이 읽어낸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명함을 내밀었다.

“이 건물에 일하러 왔어.”

“제약사에 취직했다고 하더니 여기가 영업처구나!”

“약국 차렸다고 하더니 여기가 근무지구나!”

우리는 10년 전처럼 마주 보고 웃었다. 오랜 시간을 공유했다는 건 익숙해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그만큼 짧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보면 넌 여전해. 늘 별일 없이 사는 것 같고.”

“너는?”

“나는 엄청 출렁대지. 수능 말아먹어서 상상도 못 했던 대학에 학과에 간 걸 시작으로. 지방대 스펙으로는 과외 알바도 못 구해서 서빙 아르바이트하며 허덕이고. 취업은 또 쉬웠게. 백수 생활 1년. 서류만 100개는 써서 겨우 붙은 게 여기. 여자들은 발붙이기도 어렵다는 여기.”

“나는 쉬웠게?”

“네가? 너처럼 평탄한 인생이 어딨어. 너는 가려던 약대에 떡 하니 붙었잖아. 대학에 와서도 과외는 줄줄이 들어와서 학자금도 쉽게 벌었고. 예정된 수순대로 시험 봐서 약사 하고. 월급 차곡차곡 모아서 약국 차리고. 헬조선 청년 중 너 같은 청년은 특권층이야. 나 그 청춘 돈 주고 사고 싶다.”

때마침 인기척이 느껴져 밖을 내다보니 5살짜리 남자아이를 데리고 서 있는 여자가 보였다. 나는 민정에게 손님을 받으라는 눈짓을 하고, 또 곧 올 것처럼 눈짓을 하고 약국을 빠져나왔다. 내가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오는 찰나의 시간에 손이 빠른 민정이 그 여자의 약을 다 짓고, 이미 그 여자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문지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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