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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향지 Mar 21. 2023

첫 사랑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재 오빠의 눈길은 분명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이제껏 합평회 시간마다 내 옆에 앉아서 내 시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가. 일주일 전 복도를 지날 때는 대뜸 내 옆에 와서 "나 너랑 선후배 사이 하기 싫어. 사귀고 싶단 말이야"라고 말하곤 돌아서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그 눈길이 친구 선예에게로 향하고 있다. 오빠선예 옆에 앉아서 환하게 웃고 있다.


분명 수줍음 많은 내가 너무 소극적으로 굴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고백 후 일주일이나 지났는데도 아무런 반응도 없으니 오빠 입장에서는 거절당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쩌나, 오빠에게 어떻게 내 마음을 표현해야할 지 당췌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보다 내 마음이 어떤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오빠가 마음을 표현하고 난 일주일 전부터 나는 계속 수업에 집중을 잘 할 수가 없었다. 수업 시간에 창 밖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다가 담임 선생님에게 이름을 불린지도 몰랐다. 어젠 하교 시간 전 급기야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담임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요새 집에 무슨 일있니?"

"..."

"어머니는... 안녕하시고?"

"네"

"너 정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네"

"무슨 일 있으면 꼭 선생님에게 말해줘. 민진."


문을 닫고 돌아서는 내 뒤로 담임의 목소리가 꽂혔다.

"휴... 쟤는 속을 모르겠어. 정말 답답한 아이야!"


담임 선생님은 이제까지 내가 만난 가장 친절하고 위선적인 어른이다. 하긴, 그녀의 친절은 아마 그녀가 우리 집에 대해 털끝만치도 몰랐더라면 발현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녀가 나의 담임이기 이전에 아빠 회사의 인사권자인 남편을 두고 있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엄마가 아빠의 취직 청탁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보다 일주일에 두 세번 우리 집에서 벌어지는 아빠의 음주로 인한 고성과 폭력이 동네에 소문 나지 않았더라면.


학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은  정체를 최대한 숨기는 것이다. 그 누구도 모른다. 그나마 가끔 말을 건네는  선예도 알 순 없을 것이다. 학원가가 즐비한 대한민국 사교육의 중심지라는 이 화려한 동네에서 나같이 허름한 아이가 허름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얼마나 발버둥치는 지를. 학부모 상담이나 입학식, 공개 수업에 엄마를 부르지 않는 이 사춘기 청춘들의 귀여운 독립심은 어찌나 다행스러운 것인지.  이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 부모의 학교 방문이 자신의 사생활을 참견하는 성가심이라면, 내게는 공포다. 나의 존재가 발가벗겨지는.


학교에서 나는 나 스스로 '존재감 없는 아이'를 연기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 튀지 않기 위해선 좋은 성적도 나쁜 성적도 아닌, 중간 정도의 성적이 옳다.  사실, 사교육 근방에도 이제껏 가보지 않은 나로선 이 지역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는 것도 빠듯하다. 이미 현행 진도는 쓸데 없는 것이라

선행을 끝내고 딴짓을 일삼고 있는 아이들 틈에서 최대한 열심히 수업을 들어야 그나마 최악을 면할 수 있다.  시간에는 공부가 친구였다면 쉬는 시간의 벗은 귀를 틀어막고 듣게 되는  딜런의  음악이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가끔 쓰는 시가 위로가 된다. 마음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소설이나 수필보다는 감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시가 내 삶의 스타일과 딱 맞다. 그런 내게 은밀하게 암호같은 언어로 나를 최대한 감춘 채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꽤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재 오빠에게 마음이 끌렸던 건 그런 나의 마음을 귀신같이 꿰뚫어본다는 점이다. 선예의 손에 이끌려 처음 동아리 만남을 가졌을 때 나는 시집을 읽고 있는 이재 오빠의 모습을 처음 마주했다. 오빠는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시... 좋아해?"

"좋아한다기보단... 관심은 있어요."

"좋아하는 작가, 아니 관심있는 작가는?"

"... 음... 백석이요."

"너... 시를 좋아하고 싶은거구나. 은밀한 아이네."


시집을 시간 내서 읽어본 적도 없으니 아는 시인이 있을리가... 난 오늘 아침 문학 시간에 배웠던 시와 그 시인의 이름을 재빨리 떠올려 상황을 무마했다.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 키득거리며 선예는 물었다. "너 진짜 백석 좋아해?"

"..."


그 날의 쉬는 시간 나는  딜런 대신 백석 시인을 선택했다. 그에 관한 필모보다 눈에 띄는 건,  남성적이고 선명한 이목구비가 담긴 그의 사진이었다. 나는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 사진이 어쩐지 이재 오빠의 얼굴과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선배가 선예와 함께 매점에서 먹을 것을 사준다는 권유를 나는 읽을 책이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나는 결국, 동아리방에 홀로 남겨졌다. 아니, 언제  혼자가 아닌 적이 있었나.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갖가지 념들만이 머리를 채우고 있다. 이재 오빠는 왜 그런 고백만 덩그러니 해놓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는 걸까? 상처받은 걸 내보이기가 자존심이 상해서? 그보다 나를 왜 좋아하는 거지?조금도 드러내보이지 않는 나를? 베일에 꼭꼭 쌓여 있는 나를? 그러니까 나에 대한 오빠의 감정은 호기심 아닐까? 나란 애가 어떤 애인지 알게 되면 아마 흥미가 없어질거야.  그래도 아닐 수도 있잖아. 나도 오빠를 알고 싶은 걸. 나는 '나도 오빠 좋아...해요'라는 문자를 보내려다 몇 번이고 주저한다.  


다들 학원으로 가는 시간,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집으로 왔다. 현관문을 열려는데 핸드폰울렸다. 혹시 아까 선배에게 보내려다 만 문자가 실수로 간 건 아닐까, 아찔한 마음에 핸드폰을 보니 선예에게 문자가 와 있다.


'너 선배랑 나랑 사귀는 거 어떻게 알았어?'

'응?'

'아까 매점 안 따라나온 거... 알고 있는 거 아녔어?'

'...'


나는 집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발걸음을 동네 후미진 공터로 옮겼다. 선예에게서  전화벨이 계속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그리고나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긴 울음 끝에 나는 용기내어 선예에게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근데 어떻게 사귀게 된 거야?'

'이재 오빠가 나랑 선후배 사이 하기 싫다고 사귀고 싶다고 하더라고. 내가 당장 그러자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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