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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꿈글 May 09. 2016

곰보배추를 아시나요?

#가족이 나에게 - 오래된 기침과 어리광에 특효약


 집에 수면제라도 발랐어?


친정에 다녀와서 이런저런 글을 좀 써보려고 했는데 부끄럽게도 잠만 자다 왔다. 남들은 친정이 경주라고 하면 좋겠다고 부럽다고 난린데 막상 겪고 보면 관광지가 친정이라는 게 좋지만은 않다.


 드라이브라도 나갈라치면 바글바글한 도로에 '나는 친정 온 건데 저 사람들은 왜 다 여기 와서 난리야'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남편의 직업 특성상 연휴에도 하루 출근을 해야 해서 새벽에 출발해 차만 오래 타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기도 했지만, 이건 순전히 게으른 내 탓있다.


오래전부터 그랬다. 이상하게 그랬다. 엄마가 있는 집에만 가면 그렇게 잠이 왔다. 잠이 왔다는 표현보다 잠이 쏟아졌다는 표현이 맞겠다. 마치 온 집안에 수면제라도 발라놓은 것처럼.


결혼 전 서울서 직장생활을 할 때도 그랬고,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정신없는 시절에도 집에만 가면 잠을 자는 게 일상이었다.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 옆에 딱 붙어서 재잘재잘 거려도 모자랄 판에 쿨쿨 잠만 자고 있으니 객지 생활한다고 안쓰러워 얘기는 다 안 하셨어도 서운하셨을 거다.


사실 내가 평소엔 그렇게까지 잠이 많은 편은 아니다. 구질구핑계를 대자면 아이를 키우면서는 체력이 좀 약해지기도 했고, 그 와중에 나의 정체성을 잃지 않겠다며 아이가 잠든 밤이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며 나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단순하게는 이렇게 평소에 잠이 부족하니 밀린 잠을 자는 거지 하겠지만, 나는 또 이렇게 나름의 비겁한 변명을 한다. 엄마 냄새를 맡아야 잠을 자는 아기처럼 집안 곳곳에 배인 엄마의 체취가 그리워서였다고. 엄마가 없는 타지에서 사느라 고생한다고 놓지 못한 빡빡한 긴장감이 흐물흐물 풀어져서 그런 거라고.


사실 최근에 기침으로 거의 한 달여를 고생했다. 처음엔 감기로 시작해서 더 심해지기 전에 나을 거라고 얼른 병원도 가고 약도 먹어 더 심해지지 않는다 싶더니 잔기침이 찰싹 붙어서는 떨어지질 않는 거다.


타고난 건강체질이라 자부하는 터라 거의 매일 계속되는 미세먼지 탓이려니, 환절기 일교차 탓이려니 하고 무식하게 그냥 버텼다.


뭐 잔기침이란 것이 막상 하는 나는 그리 힘들진 않은데 듣는 사람은 괜히 신경 쓰이는 그런 건가 보다. 더군다나 정말 희한하게도 엄마와 통화를 할 때면 잠잠했던 잔기침이 자꾸 나오는 게 아닌가.


곰보배추, 누구냐 넌


요 괘씸한 기침이 부모님을 상봉한 순간에 다시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니는 그 기침이 뭐 그리 오래가니? 이거 한번 마셔봐라. 이웃 할머니가 그러는데 기침에 직빵이란다. 곰보배추 효소라고, 먹을라 하면 비싼 데이."


엄마가 다용도실 쪽으로 가시더니 이상한 액체가 든 병 하나를 가져오셔서는 마셔보란다. 곰보배추? 처음 듣는 이름인데? 홀짝 마셔보니 달큼한 것이 뭐 특별한 맛은 없었다.


"엄마는 어떻게 알고 이걸 만들었대?"


"저 위에 우리 밭에 곰보배추가 나 있는데  할머니들이 기침에 좋다 하대. 할머니 손자가 기침을 심하게 했는데 세 번 마시고 나았다 하드라. 인터넷 찾아보면 기침에 특효약이라고 나온다."


"에이 설마. 세 번 마시고? 할머니들 뻥이 너무 심하신 거 아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두 번 정도 마셨나? 그러고 한참을 지났는데, 어라? 기침을 안 하네?


"엄마! 나 진짜 기침 안 하는데? 우와 이거 진짜 뭐야. 대단한데!"


"니 이거 한병 갖고 가서 기침 날 때 먹어라. 딱 두병 나왔는데 너희 이모가 달라하는 거 니 줄라고 내가 안 줬다 아이가."


귀여운 울 엄마.

친정에 갈 때마다 차 트렁크가 비어 터지도록 농사지으신 거랑 엄마가 인터넷 찾아보고 만든 효소 같은걸 챙겨 주서, 무겁다고 안 가져가려고 하면 눈이 흘기시며

 "지 줄라고 내가 힘들게 만들어놨구만. 느그 이모들은 몸에 좋다 하면 서로 달라고 난리 구만. 이게 돈으로 치면 얼마 짜린 줄 아나?"

하시는 통에


 "아유 알았어. 나는 엄마 아빠 먹을 거 우리 다 줄까 봐 그러지. 가지고 갈게요. 됐지?"

하며 매번 트렁크를 채워온다.

그것들 때문에 집에 오면 바로 쉬지도 못하고 정리해서 넣느라 바쁘지만.


암튼 엄마의 '곰보배추 효소'는 신의 한 수였다. 어찌어찌 물어보시고는 밭에 심기까지 하실 거라니 내년부 기침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갑자기 무슨 만병통치약이나 불로초를 구한 듯 마음 한켠이 든든해져 온다.

냉장고속에  고이 모셔둔 '귀한 분' 아껴먹어야지. 흐흐.

이 아이가 곰보배추랍니다
지긋지긋하게 함께 했던 기침이 거짓말같이 사라졌어요. 기침 때문에 고생하신 분이라면 인터넷에 한번 검색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오래된 기침은 물론, 철없는 자식의 어리광에도 특효약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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