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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꿈글 May 04. 2016

엄마의 정원

#가족이 나에게 - 그리움을 심는 곳

"카톡!"

오전 아홉 시가 좀 넘은 시간이면 어김없이 울리는 소리다.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돌리다가도

'엄마가 또 무슨 사진을 보내셨나?'

하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게 흔한 일상이 됐다.

카톡을 보니 에버랜드에서나 본듯한 빨간 튤립이 하늘거리며 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딸: 어? 이거 뭐야?

엄마: 엄마가 튤립 모종을 사다 심었었는데 이제 폈네.

딸: 이쁘네~


엄마:

딸: 우리 엄마 참 부지런해요~

엄마: 꽃 보러 안 올래? 김서방 바쁘면 너네 둘이 KTX 타고 오던지.

딸: 우리끼리 간다니깐 자기도 가고 싶다고 꼭 같이 간다는데? ㅋㅋ

엄마: 시간 봐서 와.

딸: 네~ 일 너무 무리하게 하지 말고.

엄마: 무리 안 해. 그래도 푸르름에 힘이 솟는다.





이런저런 바쁘다는 핑계로 겨울에 다녀오고는 한동안 친정에 가지 못했다. 아, 2월쯤인가 결혼식 때문에 아빠, 엄마가 오시긴 했었지.


평소보다 카톡으로 사진을 자주 보내시는 건 '보고 싶다, 내려와라' 하는 엄마만의 표현이다. 

지들 사느라 아등바등 바쁜데 오라 마라 하는 게 괜히 부담 줄까 그러시는 거겠지. 저 정도 얘기하시는 건 진짜 보고 싶은 거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니까.

엄마의 카톡
늘 그리워했다


여섯 자매 중 장녀인 엄마는 평생을 자신보다 다른 사람 돌보기 바쁜 사람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은 결혼한 동생들 사는 걱정, 부모님 걱정, 자식 걱정, 이웃 걱정 등 왜 저러고 사시나 머리 아프게 싶을 정도로 분주해 보였다. 자신도 결혼할 때 좁은 월세방 한 칸으로 시작했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뭐가 그리 안쓰럽다고.


다행히 아빠가 작지 않은 회사에 다니신 탓에 우리 남매(내겐 세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는 특별히 부족한 것 없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자기 옷은 10년 넘게 입는 게 예사고(얼마나 부지런하신지 30대 딸보다 더 날씬하시다) 여자들이 그리도 좋아하는 반짝이 보석하나 금붙이 하나 몸에 없었으면서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할머니 병원비, 동생들 큰일엔 통 크게 '' 하고 큰 돈을 내놓은 여자.

자식이 뭘 해보겠다고 하면 그런 건 왜 하냐고 하지 않고 잘해보라고 열심히 하라고, 배우는 건 좋은 거라고 응원해 주는 여자.


내가 그런 엄마를 너무도 애정 하는 건 그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타고난 긍정마인드와 마음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칼국수를 끓이는 날이면 우리 집엔 누구 엄마, 누구 엄마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 꽃을 피웠다.


사실 중학교 때(요즘은 미친 중2라고 한다지. 얘네들 때문에 북한이 못 내려오는 거라고ㅋ) 뾰족뾰족 예민해진 신경에 혼자 조용히 좀 있고 싶은 날이면 시끌벅적 대는 게 싫어서 방문을 부서져라 쾅 닫고 들어가서는 나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나는 공부하느라 이렇게 힘든데 저 아줌마들은 뭐가 저리 즐겁나.'

막 속으로 씩씩대면서 워크맨을 켰던 생각.


 이제야 생각해보면 남편 걱정, 자식 걱정에 딱히 취미조차 없던 엄마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타임이었던 것을... 싸가지 없던 딸이 엄마가 되어 이제야 사죄합니다. 엄마 미안, 미안, 미얀마~ 크.


이후 고등학교 때부터 객지에서 유학생활을 한 나는 다른 친구들은 엄마랑 다툰 이야기를 할 때도 그것조차 부러웠고, 문학시간 '엄마'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 꾹꾹 눌러 담았던 그리움이 터져버려 선생님이랑 친구들이 당황할 정도로 서럽게 꺼이꺼이 울었던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물론 그 사건 이후 친구들이 동정 어린 눈빛을 보내며 괜히 막 챙겨주고 그랬었었지. 물론 우리 이여사님은 전혀 모르시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을 때도 옷가지를 챙겨주시면서 눈물 글썽이는 엄마를 보며 나도 울었고, 집에 간 주말이면 늦잠 자는 내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엄마의 손길에도 울컥해서 자는 척하고 돌아누워버렸었다.




아이를 낳았는데 이 놈의 기억력을 왜 이리 좋은 건지, 옛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어쨌건 도시에서 사시던 친정 부모님이 아버지의 정년퇴직을 기점으로 경주에 전원생활을 시작하신지 올해로 4년째다.

처음에 담당자가 얘기했던 일정보다 훨씬 미뤄진 탓에 뜨거운 7월 한여름에 입주를 하셔서는 이래저래 고생도 많이 하셨지만, 완공된 집은 한여름 녹음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도시에 사시던 분들이 농사일 하시느라 검게 그을린 얼굴을 보고 왠지 막 엄청 고생하시는 것 같아 멋도 모르고 울컥하기도 했었지만.

태생이 몸이 약하셨던 엄마는 예전보다 감기에 거의 걸리지 않으시고, 만성 고혈압이 있는 아빠도 더 나빠지진 않으시는 듯하다. 더 좋아지지 않으시는 건 퇴직이후 홀짝홀짝 늘어난 아빠의 주량 탓이다.


기다려요 이여사!


엄마는 요즘도 거의 매일 카톡으로 이 계절을 한눈에 느낄만한 싱그러운 사진들을 보내주신다. 덕분에 무뚝뚝한 척 하는 부끄럼쟁이 딸은 가만히 앉아서도 전원생활을 하는 듯 이 계절을 풍요롭게 느끼고 있다.

엄마가 정원에 한그루, 한 포기 나무와 꽃을 심으시는 건 멀리 있는 자식, 손녀를 향한 그리움을 심으시는 게 아닐까. 점점 풍요로워지는 정원 사진을 보며 '내가 이만큼 너희가 그리웠다. 요녀석들아~'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곧 가서 엄마가 만든 정원에서 사진도 많이 찍고, 이쁘다고 멋지다고 센스있다고 폭풍칭찬 해주께. 새벽까지 아빠 흉보는거 실컷 들어주는건 뽀~너스! 기다려요 이여사!!"


엄마의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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