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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꿈글 May 16. 2016

외계인이 나타났다!

#가족이 나에게 - 어느 별에서 왔니?

[5월 15일, 비오는 일요일]

비 소식이 있더니 점심시간이 지난 무렵부터 정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볼일이 있어 남편, 딸과 함께 외출했다가 차속에서 확인한 반톡 메시지. (학기초부터 딸의 같은 반 친구 엄마들이 반톡에서 의미 있는 수다를 떨고 있다.)

엥? 뜬금없이 웬 달팽이? 무슨 일인가 싶어 딸에게 물었다.


"애들이 ○○한테 달팽이 잡아달라고 했어?"


"응? 달팽이? 아~ 그거 ○○이가 자기 아파트 근처에 비 오면 달팽이가 엄청 많다고 해서 애들이 신청한 거야."


"아 그래? 재밌네~ 너는 왜 신청 안 했어?"


"난 내가 잡으러 가려고."


딱 기다려! 달팽이


그럼 그렇지. 뭐든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가씨께서 그런 부탁을 할리가 없지.

'근데 그 달팽이는 누구랑 잡으러 가나? 아빠는 해야될 회사일이 있댔는데.. 설마 나? 망했다!'

집에 도착할 때쯤 되니 빗줄기가 점점 더 굵어지기 시작한다.  들어가서 김치전이나 부쳐서 먹으면 딱 좋겠는데 딸이 하고 싶다고 하니 안 해 줄 수도 없고.

'잠깐 돌아다니다가 한마리만 잡고 들어가자고 살살 꼬드겨봐야지.'

혼자 맘속으로 작전을 세우는데 따님은 벌써 비옷에 장화까지 완벽하게 무장을 하셨다.


그렇게 우리 모녀가 달팽이를 찾아 아파트 화단을 우산으로 쓱쓱 헤집길 10여분.


"엄마! 이거 달팽이! 아싸~"


지지배 평소에도 그렇게 눈썰미가 좋더니만, 이제 집에 가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날아든 카톡 사진.

'오늘 정말 왜들 이러세요. 어흑.'

근데 그 달팽이가 잔뜩 우글거리는 사진을 보는 순간, 묘한 경쟁심이 발동하면서 눈이 밝아지고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는 이만큼이나 잡았대. 우리 저쪽 공원으로 가볼까?"


"어! 빨리 가자."


비가 와서 정신이 살짝 씻겨내려갔는지, 엄마의 자존심 같은건지 나는 그렇게 공원을 누비고 또 누볐다. 아이가 옆에 없었다면 공원에 이상한 여자가 있다고 누군가가 신고했을지도 모를 일. 딸을 위한 마음에 하늘도 감탄하사 난시에 노안까지 오려하는 눈에 잠시 시력을 하사하셨는지 나는 세마리씩이나 더 잡을 수 있었고, 심지어 그중 한마리는 압도적인 크기의 대왕 달팽이였다. 오예~!


"엄마 최고! 와~ 신난다 신나. 애들한테 내일 자랑해야지!"


그래, 너의 그말 한마디를 듣자고 나는 늘 이랬었었지.



우산은 폼으로 들고 다녔는지 엄마는 비맞은 생쥐꼴, 네마리 달팽이가 든 통을 들고 깔깔거리는 딸의 모습에 남편은 웃기다고 난리.


"웃지마라. 우리 네마리나 잡았어. 내가 세마리 씩이나 잡았다고. 나 지금 완전 궁서체야."


외출했다 사서 마신 스타벅스 컵을 깨끗이 씻고, 베란다에 키우고 있는 상추잎 하나 똑 떼서 넣어주느라 딸은 열일. 인터넷 검색을 막 하더니


"엄마! 젖은 흙도 좀 넣어주라는데?"


"아 예예~ 그러세요. 요거트 스푼 씻어 놓은걸로 한스푼 떠서 넣어주세요."


"근데 얘들 숨을 쉬어야지. 빨대 꽂아줄까?"


'내딸 천잰데?'


어느 별에서 왔니?


그렇게 브랜드도 있고 모던하고 형이상학적이기기 까지한 달팽이의 스벅하우스 완성!

"엄마! 달팽이가 빨대도 타고 올라가겠지?"

한마리를 끄집어내 빨대위에 올려놓는다.

"아빠! 얘 좀 봐. 꼭 외계인같애. 우리집이 어떻게 생겼나 구경하는데? 삐리삐리 삐리삐리."


푸하! 엄마가 보기엔 달팽이가 아니라 니가 외계인같아.

딸! 넌 어느별에서 왔니?



그렇게 우리의 금쪽같은 일요일 오후는 소녀로 변신한 외계인, 달팽이의 탈을 쓴 외계인과 함께 눈깜짝 할 사이에 지나갔다. 이러고있는 나도 엄마의 탈을 쓴 외계인인가?

감기걸릴거 같은데.. 되게되게 피곤한데..

너만 보면, 니 그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만 들으면 엄마는 너무 행복해. 삐리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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