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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꿈글 May 27. 2016

버럭 카운슬러

#일상이 나에게 - 외로운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감정 이입하기를 즐긴다. 아니 즐긴다기보다 그 사람의 고민을 듣고 있으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되어 '버럭' 하는 나를 보게 된다.


친한 친구나 가족이라면 대신 버럭 대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내 버럭 댐의 대상은 나에게 고민을 발설하는 모든 사람인 게 사실 좀 문제다.


가끔 퇴근한 신랑을 붙들고 '나의 카운슬러 일지'를 읊어대는 날은 꼭 이런 식이다.


"너무 흥분하지 마. 자기 일도 아닌데."


"자기야, 그래도 이건 진짜 너무하지 않아?"


"저기 나는 그 사람들한테 별로 관심이 없어."


"자긴 너무 냉정한 거 아냐?!"


사실 나도 어느 정도는 안다. 내가 오지랖이 넓다는 것을. 근데 어쩌냐, 사람들이 자꾸 내게 고민을 털어놓는 걸.

내 귀는 너무 감성적이어서 그냥 "어, 어, 그랬구나." 하며 무심하게 흘려듣는 게 안 되는 것을.

이런 나에 비해 꽤나 이성적인 신랑의 반응에 이렇게 대꾸한다.


"자기야 내가 죽으려고 하는 사람 살려주는 거야. 우울증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




우리동에 사는 나보다 세 살 많은 언니가 있다. 처음 이 아파트로 이사와 아는 사람이 없을 때, 오며 가며 만난 언니는 특유의 반달눈 미소로 인사를 받아주곤 했다.


알고 보니 언니 둘째 아들이 딸과 동갑이라 같은 유치원을 보내면서 친해지게 됐다. 사람들의 삶이란 한 발짝만 들어가 보면 다 거기서 거기고 고민 없는 사람 없다더니 언니 역시 그랬다.


 조울증이 있는데다 결정장애가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처음에 나 역시도 언니가 조울증이 있는 게 이해가 안됐다. 아저씨는 삼*이라는 대기업에 다니시니 급여도 괜찮고, 너무 착하고 성실하신데다 아둘둘 건강하게 잘 크고 있으니 무슨 걱정이 있을까 라고.


나 너무 우울해.
무슨 일 있어요? 왜 우울해요?
그냥..


"언니 그냥 집에만 있지 말고 운동을 하던지, 뭘 좀 배우든지 해봐요. 가서 새로운 사람들도 좀 만나고."


"뭐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애들 학원비도 만만치 않은데 나까지 취미생활에 돈을 쓰는 게.."


언니의 문제는 이거였다. 5남매 중 막내,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꿈이 없고, 남편과 자식에게만 올인하며 자신을 사랑할 줄 몰랐다. 그런 언니를 지켜보며 평생 자식들만 보며 살아온 친정엄마가 생각 울컥했다.


"언니, 언니가 그 돈 안 쓰고 집에만 있는다고 해서 나아지는 건 없어요. 엄마가 우울하면 그게 어디로 가겠어요? 어제도 큰아들한테 괜히 짜증냈다면서요."


"걔는 뭐 하고 싶은 게 없나 봐. 게임만 하고 있는 게 답답해서."


순간 버럭 신이 강림.


"아들에게 당당해지려면 언니부터 자신감을 가져야죠! 그냥 취미가 싫다면 창의수학지도사, 논술지도사, 독서지도사 같이 아이 교육에 관한 것도 많아요."


"나 공부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


"언니, 그럼 계속 우울할 거예요?"


답답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겹쳐져 나도 모르게 열변을 토하고,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신랑 장기출장으로 3년 전에 미국 가서 2년 정도 살았었거든. 기본적인 회화는 좀 하는데.. 큰 애 엄마 중에 스터디하는 사람들 있는데.. 같이 해볼까?"


"정말요? 너무 좋은데요! 해봐요 언니!"


그렇게 언니는 영어회화 스터디를 시작했고, 가끔 백팩을 메고 스터디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가다 마주치면, 공부하러 가서는 수다만 떨다오고 가끔 쇼핑도 같이하고 놀러만 다닌다는 엄살도 함께.

전보다 훨씬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 때문에 한동안 아지트가 되었던 집 근처 공원에서 자주 만나며 언니 동생 하게 된 엄마가 있다.

20대 초반 정말 멋모를 때 신랑과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고, 몇 푼 안 되는 신랑 월급을 쪼개 사느라 죽도록 고생하며 살았는데 신랑은 전혀 고마워 하지않는다고.


 나보다 5살이나 어린 나이에 화장기 하나 없이 퀭한 얼굴, 대충 묶어올린 머리, 목 늘어진 티셔츠는 그녀가 얼마나 자신에게 인색한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언니 나 우리 신랑 때문에 돌겠어요. 퇴근하면 집에와서 손하나 까닥안해요. 입맛은 또 얼마나 까다로운지. 시댁에는 또 걸핏하면 가자그러고. 나 거기가면 완전 하녀예요,하녀. 결혼하고 나서 쭉 명절에 이삼일 전에 시댁에 가고, 제사 준비하고."


"야 너 바보야? 니가 버릇을 잘못 들였네. 너 거울 좀 봐. 되게 피곤해보여. 영양제 같은건 먹니?"


"아뇨. 신랑이랑 애들것만 챙겨주고.."


"아이고 내가 못산다. 너 둘째낳고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해서 여기저기 아프다며?"


"네.. 한번은 쓰러졌었어요."


"니네 신랑이 그렇게 잘났어? 그렇게 손도 까닥 안 하시는분이 너 그러다 쓰러지면 어떻게 살거래?

니 몸 니가 챙겨야지. 앓는 소리도 좀 하고. 얘기 안하면 모른다."


"얘기해도 그때 뿐이고 똑같아요."


"야! 헤어져, 헤어져!"


"언니..애들은.."


"애가 문제야? 니가 살아야지."


"그래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예요. 제가 많이 좋아해요."


"그래? 그럼 그냥 그렇게 살아야지."


뭐 매번 이런식이다. 내가 뭐라고 남의 가정사에 이래라저래라 하겠냐마는 울컥울컥 화가 치밀어오를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내가 '버럭 카운슬러'를 자처하며 깨달은 바가 있는데, 정말 남편과 헤어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그 속내를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게 고민 보따리를 푸는 그녀들 중엔 적어도 정말 이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이혼은 커녕 내가 버럭 댄 게 민망할 정도로 잘들 살고 계시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 라고 하지않나.


내 얘기를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시댁에 갔다가 뺀질대는 시누이한테도 한소리하고 남편한테도 큰소리를 냈다고 들었는데,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는 모르겠다.  헤어지지않고 잘 살고 있는걸 보면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책을 찾은 모양이다.


흔히 카운슬러라고 하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지극히 객관적인 관점에서 그 사람의 고민을 듣고 차분하게 해결책을 찾아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저 같이 목청 높여 버럭 대준다. 지금까지도 고집하고 있는 나만의 상담 방식이다.


어느 순간 이들이 나의 버럭 상담을 받고 좋아하는 이유가 '버럭 캐릭터' 연예인에 열광하고, 욕을 먹기 위해 일부러 욕쟁이 할머니의 식당을 찾아가는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자신에게, 때론 자신의 편에서 자신을 외롭게 하고 괴롭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 같이 버럭대 줄 수 있는 누군가를 늘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 사람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주며 "릴랙스~릴랙스~" 해주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가끔은 오롯이 그 사람의 편이 되어 목청껏 버럭대주면 어떨까?


얼마전 고민에 대한 사연을 보낸 사람이 직접 출연하는 토크쇼 '안녕하세요' 라는 프로그램을 보게됐다. 가부장적인 남편에 대한 사연에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며 공감하는 방청객들의 얼굴을 보고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꼈던 생각이 났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사연을 들으면서 나는 또 그 부인이 되서 버럭대고 있었다. 내 남편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 내가 그 사연이 주인공이 아님에 내심 안도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살아가는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 뭐 사는게 별건가.



애정없는 버럭은 없다!
당신에겐 '버럭' 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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