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듣고 싶은 말
몇 번 입어보지도 못한 봄옷을 정리할 틈도 없이 초여름이 다가온 통에 요즘 괜히 마음이 바빠졌다. 바빠지는 마음을 몸이 따라가지 않는다. 미루던 옷장 정리를 억지로 억지로 하다가 괜히 막 심술이 난다.
'에잇! 이건 입어보지도 못했네.'
벼르고 벼르다가 작년 시즌오프 때 산 트렌치코트를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고, 샤랄라 플라워 패턴 원피스도 보기 좋게 걸려만 있다.
이번 봄은 유독 짧았고 변덕스러운 날씨, 황사, 미세먼지들의 기억뿐이다.
아니다. 이런 건 다 핑계고 봄의 시작과 함께 저질러버린 일들이 너무 많았다. 스스로 버거울 만큼. 계절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할 만큼.
봄을 그리고 싶어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분명 봄을 그렸는데, 그림 속에는 봄이 있는데 내게 남아있는 봄의 기억이 흐릿하다.
주. 객. 전. 도
*트렌치코트와 샤랄라 원피스를 입지 못한 진짜 이유
1. 그림, 특히 유화를 그릴 때는 편한 옷이 좋다.
(유화 도구를 넣고 다니는 캐쥬얼 백팩에 트렌치코트, 원피스가 웬 말이냐)
2. 그림을 그리느라, 글을 쓰느라 운동할 시간이 없었다.
(더 예쁘게 입겠다며 한 사이즈 작게 샀는데, 다이어트는 아직...)
정말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저 '멍'하게 거리를 거닐며 사람 구경을 하거나, 귀에 이어폰을 꽂고 그동안 자주 듣던 노래가 꽉 찬 나만의 앨범을 플레이하고는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어디론가 가고 싶다. 제주도에 있는 친구에게 불쑥 찾아가 "서프라이즈~!" 하고 싶다.
아이가 커갈수록 신데렐라, 아니 줌마렐라의 통금시간은 조금씩 늦어지고 있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흔한 연애소설 속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하는 주인공이 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는 게 갑자기 눈물 나게 슬퍼졌다. 잘 나가던 여배우가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 아닌 억척 아줌마 캐릭터로 돌아온 것처럼.
생각해보니 나는 항상 그랬다. 뮤직차트에 벚꽃엔딩이 역주행을 하고, 전국 벚꽃 명소에 꽃반 사람반 일 때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보단 차라리 늦은 봄비 후에 찾아온 녹음에, 그 싱그러움에 더 설레어서 히스테리를 부리곤 했다.
아.. 곱게 늙어야 하는데..어흑
괜히 심술맞게 일렁이는 초여름의 녹음에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아파트 옆 중학교 담장에 핀 장미꽃을 노려본다. '짜증나게 이쁘네. 찰칵.' 짜증 난다면서 사진은 또 왜 그렇게 찍어대는 거니?
언젠가 한 번쯤은 들어봤던 말인데, 누군가가 백송이 가득 담긴 바구니도 주었더랬는데..
왜 이제야 격하게 듣고 싶은 말인가.
어쩌면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
이 노래가 이렇게 슬픈 노래였나? 주책이다 진짜.
며칠째, 싱숭생숭하여 그냥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들만 작가의 서랍에 하나씩 끄적여놓고 다른 작가님들 글만 열심히 읽고 다녔네요. 어제밤 달빛에 취해 글을 썼다 아침에 보니 어김없이 부끄러워 또 손을 좀 봅니다만...
기승전 발행! 싱그러운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