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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독다독 Jan 15. 2016

내일을 위한 걸음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에 대한 산만한 리뷰

  영화의 원제가 <Two Days One Night>인 점을 고려할 때 한국판의 제목이 좀 더 느낌 있는 게 아니냐고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난 원제에 한 표를 던진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관조적인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부던히 애를 쓰는데, 이 노력 사이로 간혹 노출되는 파편들이 영화를 둘러싼 정서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Two Days One Night>이라는 제목은 영화가 인내하며 따라가는 인물들의 노정을 담아내기에 적합하다.


  이 건조한 영화는 기법적인 측면에서 이미 선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느낌을 가지려는 카메라는 풍경에 감정을 담지 않는다. 영화가 비추는 배경은 주로 메시지를 획득하기보다 인물이 살아내는 시간들의 사실성을 뒷받침하는 기둥처럼 기능한다. 여기에 다양한 프레임, 앵글을 사용하기보다 감정이 전해져야 하는 씬에서는 상반신 중심의 화면을, 산드라의 노정을 보여주는 씬에서는 충분히 거리를 두고 관망하는 고정된 화면을 사용하는 관찰자적 자세가 그러한 기능과 교호적으로 작용하여, 매 테이크에 깃든 시선에 조응하고 있자면 자연스레 산드라를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영화는 여기에서 이미 성공적이다.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면은 이동과 대화 두 종류이다. 이 영화는 시청하기에 썩 간편한 영화가 아니어서, 카메라가 요구하는 진득함에 기꺼이 동참해야 한다. 그 속에서 산드라는 걷고, 행동하고, 대화하고, 솟아오르는 감정에 반응한다. 가급적 최대한으로 보여지는 그 과정이 영화를 이동 경로에 따라 단순화한다.

  간단히 말해 산드라는 주로 걷는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달하면 대상과 대화를 나누고, 다시 걷는다. 산드라가 보여주는 걸음걸이는 여러 번 고민해봐도 마리옹 꼬띠아르의 평소 걸음걸이가 아니라 의도되고 연습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 걸음걸이가 산드라의 캐릭터와 영화의 시선을 압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간 벌어진 팔자로 힘을 많이 주지 않고 툭툭 걸어가는 다리의 움직임과, 구부정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기울듯 말듯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어깨, 휘적대지는 않지만 ㅅ자로 들어올려져서 의지적으로 치는 팔, 더운 날 불가피한 일을 처리하러 움직이는 사람의 일그러진 표정으로, 큰 고저 없이. 산드라의 걸음걸이가 담기는 테이크는 늘 긴데, 테이크에 따라 걸음걸이는 정면에서도, 뒤에서도, 옆에서도 관객에게 각인될 만큼 다각도로 보여진다. 내키지 않지만 힘을 쥐어짜 자신에게 닥친 거대한 사건에 임하고 있는 산드라의 의식적인 활기*가, '싸움'으로 묘사되는 영화의 서사를 견디는 그녀에게 이해 혹은 연민 사이에서 어떤 형태로든 느껴지는 감정을 투영하게 만든다.

  

  걸음걸이 외에도 흥미로운 것은 대화 혹은 만남이다. 동료들과의 만남은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산드라의 복직에 대한 찬반 배열 자체가 무작위 순서이며, 찬성 혹은 반대의 세부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한쪽 끝에는 전적으로 자신의 비겁함에 부끄러워하며 산드라의 편을 들기로 하는 동료가 있고, 반대편 끝에는 냉정한 근무 현실에 대해 강하게 쏘아붙이는 동료가 있다. 보너스 때문에 아버지를 때리는 아들과, 아예 산드라를 만나주지도 않는 동료도 존재한다. 이러한 다양성은 핍진성을 담보하며 동시에 의도적으로 정확히 찬반이 8대 8로 나뉘는 투표 결과를 위해 계획되어 있다. 이 계획 속에서 가장 의도된 것은 핍진성을 끌어올리는, 거의 모든 동료들이 묻는 공통의 질문이다. "널 지지하기로 결정한 사람이 몇 명이야?"(혹은 "보너스를 포기하기로 한 사람이 몇 명이야?") 이 질문은 만약 다수가 보너스를 포기한다면 자신도 따를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나오지만 극단적으로 산드라와 보너스를 동일 선상에서 고려하는 심리이다. 양자택일이라는 영화의 상황설정** 속에서 인물들은 그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산드라에게 묻는다. 너의 존재가 금전적 이익(보너스와, 거기에 더해 추후에도 한 명이 줄어들어 생길 수 있는 수당 증가)보다 우위에 설 수 있겠냐고.

  

  한 번 한 번의 대화마다 산드라는 큰 감정기복을 겪는다. 이때 산드라를 끝까지 지지하고 일으켜세우는 것은 남편이다. 남편은 이 영화에서 매우 불리한 위치에 서 있다. 자칫 산드라에 공감하지도 못하면서 산드라를 다그치는 고압적인 인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하자. 단순하게 생각해도 산드라를 100퍼센트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편이라는 인물의 존재 이유 중에는 물론 영화 속 그의 역할과 언행들이 최선인가 아닌가를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이 있겠지만, 연대를 형성하는 힘의 성질에 대해 시사하려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남편은 산드라의 포기를 말리고 약을 먹지 않기를 바라지만, 약을 못 먹게 강제하지도 않고, 산드라의 슬픔을 폄하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일관적인 지지가 산드라가 직면하는 문제, 즉 자본과 이익으로 산출되는 노동력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투쟁의 가치로 바꿀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감정기복과 찬반의 무작위 반복을 거쳐가며 수량의 문제는 투쟁의 문제로 형질 변환된다(물론,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수량적 개념의 문제가 해결되거나 변화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시스템을 흔들지 않지만 시스템의 민낯을 드러내고 적어도 투쟁의 정당성을 강화한다).

  산드라는 계약직 노동자와 재계약하지 않는 대신 해당 티오로 복직하라는 딜레마 앞에서 거절을 선택한다. 마지막 장면에까지 그녀는 사장과의 대화를 마치고, 영화 내내 차로 도착하기만 했던 회사에서 걸어간다. 그녀의 걷는 행위 자체는 이미 투쟁을 상징한다. 이동-대화-이동 구조를 마지막까지 연장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조금 더 활기를 띠는 걸음걸이는 산드라가 마지막 대화에서는 승리-라고 말하는 것은 일견 지나치지만-를 거두었다는 반증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영화의 끄트머리에서 산드라가 스스로 확증하는 것은 '나는 투쟁해도 된다, 투쟁할 수 있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일종의 실험처럼 어느 한쪽을 편들 수 없게 만들어진 구도 속에서 영화가 기대하는 것이 반대표를 던진 8명에 대한 비난은 아닐 테다. 연대를 말하고 싶었다는 다르덴 형제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이 역시 잘못하면 산드라 편과 반대편을 선악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은가), 산드라의 싸움과, 그녀가 싸울 자격을 스스로 상실하지 않게 돕는 영화 속 관계들은 투쟁의 정당성을 가리킨다는 것이 개인적인 결론이다. 투표 직전, 영화는 산드라가 투쟁할 자격을 해체하는 것이 반장의 강압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게 만든다. 투쟁의 자격을 해체하는 것은 특정한 개체로부터의 외압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상황이고 구조이다. 이 영화가 핍진하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러한 지점이다. "우리 잘 싸웠지?"라고 묻고, 걷는 것. 정신승리니 뭐니 한다 해도, 시스템을 상대로 개인이 얻어낼 수 있는 투쟁의 진실이 거기 있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그것을 정성스레 형상화했다.

  

사족 :

1. 마리옹 꼬띠아르는 표정부터 몸짓까지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다. 대박이란 말밖에.

2. 밤에 집에서 인물들은 어떤 대화를 주고받고 어떻게 잠에 드는지, 안느를 데려간 밤은 어땠는지 등이 묘사되지 않은 것이 개인적으로 아쉽다.

3. 비서..! 사장 비서!! 사장 비서는 하필 동양인 여자고 정규직에는 없는데 하필 계약직에는 흑인이 있다. 야이..



* 돌이켜보면 산드라는 걸음걸이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마주할 때에도 힘껏 임한다. 냉담한 관객은 혹 그녀를 '나약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허나 나름의 최선이라는 면에서 산드라는 투쟁적이다. 호전적인 몇몇 인물들(남편, 줄리엣 등) 사이에서 이 투쟁심은 빛을 발하며, 침대와 화장실을 중심으로 한 생활 공간 속에서 산드라의 신체를 통해 선명해지는 그녀의 갈증-계절적 배경과 물 마시기를 떠올려보자-과 지속적으로 대립한다. 그녀는 안느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겠다고 찾아오자 즉시 안정제를 다 먹었음을 침착하게 고백한다. '처음으로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고 말하는 안느가 자발적으로 식사를 주문하는 산드라와 연대를 형성함은 당연하다.


** 물론 영화의 상황설정이 매우 사실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생산근로자의 수나 사업 품목을 고려할 때 그 정도 사업장에서 굳이 티오 하나를 줄이면서까지 재무 안정을 도모할 확률은 크지 않고(산드라가 심한 우울증 환자로 근무 효율이 장기간 저조했기에 사측에서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결정한 것이지만. 이렇게 생각할 때에는 영화 바깥의 서사에 대한 대결 구도의 고민이 또 따라온다. 소규모 사업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를 한 명 배제하는 데서 오는 분위기 악화와 의욕 저하 VS 우울증으로 인해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 분위기를 해칠 수 있는 동료를 고심 끝에 배제하기로 결정하며 획득할 수 있는 환기와 효율 상승), 보너스의 액수가 '객관적으로 볼 때' 막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설정이야말로 영화가 던지는 고민들이 갈등할 만한 애매하고 어려운 것으로 느껴지게 한다. 상황설정 자체만 수용하고 나면 영화 속의 모든 대립쌍들이 각축전을 벌인다.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85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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