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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독다독 Jan 15. 2016

세상의 끝까지 앞으로 21일이라니...

제목 번역이 대체 왜 이래?

  이 영화를 보려고 마음먹었던 계기는 아주 단순하게 '키이라 나이틀리가 나와서+세계 종말을 다룬 영화라서' 인데, 비교적 평이한 영화의 성격과 별개로 종말이라는 특수한 사건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은 생각할 만한 거리들을 던져준다.

  

  으레 그렇듯 개인의 소유는 죽음 앞에서 무의미해지고, 때문에 인류가 곧 다 죽게 생긴 상황 앞에서만 사적 소유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가족 관계와 도덕 관념도 마찬가지. 그런데, '방종과 타락 -> 종말 유발'이라는 종교적이고 뻔한 도식과 더불어 그만큼 진부한 것이 '직면한 죽음 -> 마음대로 즐김'이라는 도석이다. 이게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면 인류 전체의 방종이 자연히 유도되는데, 문제는 원래도 죽음을 코앞에 두었다고 해서 자기 맘대로 뻗대고 사는 것을 사회는 지양한다는 점이다. 이게 왜 문제냐면, 이 지양이 어디까지나 그것을 지양하는 사람들이 대상처럼 곧 죽는 게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주인공 둘은 그러한 맥락에서 '사회적'으로 로맨틱한 결말을 맞이한다. 영화 속에서 이 둘의 결말이 꼭 옳다고 가름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곧 죽게 생기니까 진짜 인연을 알아본다는 식의 멜로 특유의 기치는 가져간다(아, 이 영화 굳이 적절한 분류를 하나에만 한다면 멜로 영화다). 둘은 한 날 한 시에 죽는다! '좋은 사람 알아보기'의 난망함이 이렇다. 각기 다른 사랑들을 거치며 사는 와중에 진짜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게 어렵기도 하고, 반대로 지구 종말 같은 극한의 상황 정도나 되어야 식별안이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평이한 멜로보다 이런 멜로를 개인적으로 선호한다. 할리우드 클리셰인 로맨틱 코미디나 절절한 멜로는 으음.. 그 자체로 장르 레퍼런스가 될 만큼 고퀄리티이거나 큰 인기를 끄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게 주관이다. 가령 따뜻한 겨울 옴니버스는 <러브 액츄얼리> 선에서 거의 모두 정리되잖는가. <노팅 힐>의 위력은 여태까지 유효하고. 거슬러거슬러 올라가면 환상적인 <로마의 휴일>이 버티고 있다. 그래서 다음에 볼 예정인 특수설정 멜로는 역시 동일하게 옛날에 받아놓고 듬성듬성만 봤던 <퍼펙트 센스>이다.

  

  한국에 수입되며 어떤 종류의 컨텐츠이든 제목이란 것은 더 적절해지거나 더 부적절해지거나 하기 마련인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더 부적절해지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이 영화의 경우도 그렇다. 종말까지 얼마 남았는지가 간간이 알려지면서 시간의 흐름 역시 영화에서 무시할 부분은 아님을 상기시키지만, 사실 그렇게 큰 비중을 담당하고 있지는 않다. 원제의 의미가 상당 부분 날아갔다.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69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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