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A
모든 카투사들의 요람인 KTA은 KATUSA Training Academy의 약자로써, 카투사가 육군훈련소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마치고 가는 후반기 교육대다. 이곳은 3주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고, 첫 입소 시 주말 동안 입고 온 모든 한국군 물품을 정리하고 새 미군 전투복과 전투화 등 피복을 지급받는다. 머리도 미군 스타일로 깎는다. 미군 식당에서 식사하며, 미군 교관과 한국군 교관에 의해 미군훈련소와 동일한 환경에서 훈련을 받는다. 그러니 한국군 훈련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밥 먹을 때 두 무릎과 두 발을 붙이고 앉아서 먹어야 하고 식사 시간이 5분 정도 지급되었다. 메뉴를 받을 때, 샐러드바를 이용할 때 다리는 게처럼 옆으로 계속 움직이며 퍼야 했으며 자고 나서 새벽 4시 30분에 집합할 때는 얼굴에 털이 하나도 남아 있으면 안됐다. 지금은 모르겠다. 나 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8년이 지나 내가 카투사교육대 교관일 때의 분위기는 그때 언급하겠다.
논산 훈련소에서 조교들의 환송을 받으며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의정부역. 세부적으로 기억을 떠올리려 눈을 감고 있다. 생각나는 것은 모두 교관 때 내가 훈련병들을 통제할 때이다. 그것 말고 내가 훈련병일 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KTA에 가는 걸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며 혹한을 참았다는 것. KTA에 입소한 것은 내 생일인 2월 25일이었다. 내 귀의 캔디도 아니고 바로 옆에서 계속 무슨 말일지 모를 말을 질러대는 조교와 교관을 지나 버스에서 뛰어내리자마자 KTA의 드릴 패드(제식을 연습하는 넓은 실외 장소)에서 네 개의 소대별로 동서남북으로 양팔 간격으로 선다.
육군훈련소에서 받아온 더플백(예전 군 선배들이 따불빽으로 발음하는)에 들어있는 모든 것을 열고 거꾸로 탈탈 털었다. 이걸 쉐익다운(shake-down)이라고 불렀다. 혹시 굶을 까봐 저마다 가져온 초코파이(교회에서 실로암 부르고 준 것), 건빵, 면도기, 면도날, 세탁비누, 세숫비누, 깔깔이(방상내피), 내복 상하의 등은 모두 수거당했다. 필요 물품들은 호랑이 눈빛에 호랑이 이빨 조교에 의해(나 때는 카투사 상병, 병장쯤 되는 조교가 근무했다. 내가 교관 때는 없어졌다. 지금도 없다.)
하나하나 체크하며 다시 더플백에 넣어 배럭(Barracks, 숙소)으로 일렬로 걸어갔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일단 따라간다. 논산보다 의정부가 춥지만 추운 걸 느낄 틈도 없다. 제일 앞에 앞장선 조교가 3인 1실로 되어 있는 배럭의 방을 배정해 준다. 말을 못 알아들으면 귀에다가 또 내 귀에 캔디 한다. 짐을 놓자마자 강당에 모이란다. Wightman hall. 화이트맨 홀 아니죠. 와잇먼 얼. 겨울이라 이미 해는 져가고 강당으로 가는 길에 슬쩍 미소가 지어진다.
와씨 냄새부터 다르다. 강당 의자 사이는 상당히 좁았다. 그래도 교회에 있을 법한 긴 의자가 아닌 극장같이 일어나면 접어지는 방식의 의자다. 엉덩이로 누르며 앉아야 앉아지는. 앉아서 오른쪽 나무로 된 좁은 팔걸이를 열면 나오는 작은 책상을 펴란다. 강당 가운데에 앉아 있는 교육병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한다. 갈색 봉투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열어보니 반투명한 12cm쯤 되는 통에 붉은색 음료와 랩에 싸인 샌드위치, 오렌지가 나온다.
"다 받았어? 먹어."
목소리가 쫙 깔리면서 멋졌다. 멋진 것을 느낄 새도 없이 입에 우겨넣는다.
미군부대의 첫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