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A 2 / 자대 전입
재입대를 할 때(재입대 이야기 아래 참고),
https://brunch.co.kr/@magnet/52
연장자 순으로 입대를 한다는 건 전에 말했다.
나는 재입대를 1월에 하게 되었으므로, 내 동기들은 모두 비교적 연장자 형님들이었다. 3~4년 형님들이라 다 나보다 체력이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체력 준비도 많이 했었다.
다 제꼈다.
2.25일 졸업(수료라고도 함)식을 하루 앞두고 우리 교관님이 나를 부르신다.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성함은 생각나지 않는데,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그날은 싱글벙글이다.(이런 리더가 되지 않아야겠다고 그때는 생각했다. 지금은 그 누군가 나를 보며 나 같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겠지만)
내가 1등 졸업이란다.
무척 기분이 좋았고, 이 사건은 아마도 내가 직업군인을 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거다.
학창 시절부터 그냥 선생님이 시키는 건 열심히 했다. 숙제건 수업시간에 듣는 것이건.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시키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게 내 기쁨이었기 때문에 했다. 선생님이 좋아하는 걸 하는게 좋았다. 그래서 뜻있는(?) 다른 친구들보다는 모범생처럼 모였을 수 있으나 나는 특별한 꿈이 없었고, 뭐 하나 대단한 목표나 열정이 있지는 않았다. 커서 뭐가 되고 싶다라던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건 안 하겠다든지. 이건 누가 뭐라 해도 하겠다는.
그런 나의 피를 끓게 해준건 KTA 1등 졸업이었다.
어렵게 들어온 군대이기도 했고, 열심히 하기도 했고, 소중함도 알았고. 감사함도 알았고.
특히 미군부대에서 군인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체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1등을 할 수가 없다. 점수 비율이 체력시험이 제일 높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해서 노력한 결과물을 손에 받아 드니 그 기쁨이 말할 나위 없이 좋았다.
2003년 2월 25일 나는 성남 카투사로 자대 배치를 받는다. 의정부로 지원대장님께서 (상사 허 OO, 지금 인스타 친구이심) 자가용으로 데리러 오셨다. 1등 졸업장을 가지고 가니 자랑스러워 하셨다. 나도 자랑스러웠다.
위치는 성남비행장(서울항공 공군부대와 바로 붙어있는)에 있었고 항공관제를 주로 하는 항공단의 본부중대의 보급병이었다.
지원대장님과의 간단한 전입신병 면담 이후 RSO(ROKA Staff Office, 한국군 인사과)로 넘겨졌다. 지원대장실 바로 옆 사무실인데 이곳에서 가장 고참은 김OO 그당시 상병, 조OO 일병이었고, 이들은 지원대장을 보좌해 부대 카투사들의 휴가, 진급, 상벌, 전역, 전입교육 등을 담당하는 사람들이었다.
신병이 전입을 오면 전입에 필요한 서류들을 작성하고, 맞고(우리 땐 바로 위 선임을 이렇게 불렀다. 맞고참)가 전입신병을 데리러 온다. 그래서 자대생활에 필요한 모든 교육을 시키고, 밤에 있을 신병신고를 대비한다.
지금도 어디를 뒤져보면 그때 썼던 수첩이 있을 거다.
지금도 나 포함 이미 다 중년이 되어버린 카투사 단체방이 있는데, 이 글을 매우 흥미로워할 거다.
RSO 고참들은 무섭지는 않았다. 아니 말투는 친절한 듯했으나, 표정이 무표정이어도 너무 무표정이었다. 그냥 군생활이 싫은 거고 신병도 귀찮은 거였다. 신병 군기 잡고 그런 건 천천히 하면 된다. 그런데 그냥 나는 전투화 안에 신은 양말이 홀딱 젖어 가고 있었다. 긴장을 한 거였다고 할 수 있나 보다.
맞고가 왔다.
어디서 많이 보던 사람이다.
이 생각은 0.2초였고 SW이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