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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준 Jan 19. 2024

군인 갤러리 6화

맞고 SW

SW. 그는 내가 육군훈련소에 있었을 때 동기였다. 10월에 논산으로 넘어가기 전 귀향조치를 당하고 3개월 만에 1월 군번으로 입대했으니 계산이 딱 맞았다. 그는 예카(예비카투사) 카페의 카페지기였다. 친했었기에 내가 귀향조치를 당해 카투사를 뒤로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메일로 길게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거 그 수많은 부대들 중에 그 부대 중에서도 본부중대 내 바로 윗고참이라니.


그때만 해도 신병이 웃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때. 제일 금기시되는 것. 첫째, 조는 것. 둘째, 웃는 것. 셋째 신병인 것. 그런데 그런 분위기에서 (내가 군인이 덜 되었는지) SW을 보니 너무 반가워서 그만 웃을 뻔했다. 그는 사뭇 진지했다.

신병의 바로 윗 고참의 역할은 이랬다. 그는 바로 어제까지는 그 부대의 막내였다. 내가 왔다고 해서 바로 진급을 한다거나 해서 막내의 티를 벗어버리고 고참과 어깨동무를 하며 "아 제가 이제 막내를 벗어났지 말입니다" 할 수가 없는 그냥 막내를 벗은 막내다. 그런데 말이다. 이 막내를 벗자마자 더 무거운 짐이 지워진다. 개념은 어디로 밥 말아먹은 신병을 관리해야 하니 말이다.

어떻게 관리하느냐고요?

말해주겠다. 매뉴얼이 있다. 신병은 전입 후 3주 동안은 쉐도우같이 맞고(바로 윗고참)의 왼쪽 반보 뒤에 바싹 쫓아다닌다. 그리고서 맞고가 고개 숙여 "안녕하십니까!" 우렁차게 인사를 하면 막내도 우렁차게 따라 인사한다. 상대방이 누군지도 모른다. 그냥 한다. 맞고가 손을 들어 거수경례를 하면 막내도 따라서 한다. 맞고가 화장실을 가면, 따라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막내는 혼자 움직일 수 없다. 식사를 하러 가다가 된통 고참들에게 혼날 수가 있기 때문에 맞고가 항상 붙어 다녀야 한다. 일과가 끝나고 전투복을 다리는 방법을 가르친다. 전투화를 물광 내는 방법을 가르친다. 고참의 이름을 외우게 시킨다. 고참의 소속을 외우고 검사한다. 가르치고 가르치고 또 가르쳐도, 그다음 날 신병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졸거나, 실수를 한다.

졸면, 고참들이 그런다. "야~ 맞고야, 신병 피곤한가 보다."

그날 밤은 집합이다. 어디서부터 집합인지는 모른다. 일병진은 우리는 일병 중 가장 높은 기수를 말했다. 상병진은 상병 중 가장 높은 기수를 말했다. 일병진은 실세고, 상병진은 날아가는 새를 떨어뜨리는 권세다. 병장은 그냥 전설이고. 쳐다볼 수가 없다.

그래서 맞고는 고달프다. 신병은 미안하다. 아니 미안할 틈이 없다. 긴장하면 더 졸리다. 고개가 천근만근이다.

우리 부대는 고참 중에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 그래서 상병을 달 때까지 일과가 끝나고 저녁식사를 다같이 모여서 병영식당에서 하고 나면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 "야~ 농구하자." 농구를 언제까지 하는지 아는가? 밤 11시까지 한다. 오후 6시 반부터. 매일.

밤 11시까지 농구를 하고 나면 막사로 와서 전투복을 풀 먹이고 다리미로 다리고, 전투화를 닦는다.

그냥 깨끗하게 닦고 깔끔하게 다리는 게 아니다. 다른 건 다 과장해도 이건 과장하지 않고 말하면, 카투사들은 그 당시 신병 첫 외박 때 '스타치'를 사 오라고 시킨다. 아무 데서나 파는 게 아니라 파는 장소까지 말해줘야 정확한 걸 사 온다. 그걸 3캔 사 와야 한다. 다림질하기 전에 옷에 먹이는 스프레이 형식의 풀이다. 지금도 그 향이 코에 배어 있다. 21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그 스타치로 전투복 위 아랫도리가 흠뻑 젖도록 뿌린다. 그리고 말린다. 방에 있는 라디에이터에서. 그러면 그 바지가 벽에 기대는 것도 아니고 밑단을 살짝 구부려서 세우면 선다. 그 전투복을 물을 뿌려서 약간 부들부들하게 한 다음 체중을 실어 다리미판에서 다린다. 칼각을 잡는 거다. 그걸 매일 한다. 그 전투복을 입고 다니면 '사각사각' 또는 '석석' 소리가 난다. 그게 멋이었다.

전투화는 물광, 불광 여러 방법이 있는데, 그 당시 미군 전투화는 (지금은 쎄무, 스웨이드 재질이라 닦지 못하게 되어 있음) 확대하면 오돌토돌한 구멍이 엄청 많이 나 있는 검은 가죽 전투화였다. 참, 아까 스타치 사 오라고 할 때 '전문가용 말표 구두약'을 5통 사 오라고 한다. 카투사는 일반용도 아니고 전문가용을 써야 한다는 것이리라. 그 구두약으로 날이 새도록 닦는다.

전투화 닦는 이야기부터 다음에 하겠다. 여하튼 전투화 광은 고참이 얼굴을 비쳐봤을 때 고참 얼굴이 일그러지지 않고 그대로 보여야 통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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