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순례자 절대법칙 3가지

나에게 거는 주문 모음. zip

by Magnetto

1. 하루 평균 20km, 6시간 걷기.

물집이 잡히고, 발바닥이나 발목이 부어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절반을 걷는다. 순례길에 오른 지 3주가 지난 지금에서야 20km 이상 걷는 날이 부쩍 늘었지만, 조금만 무리하면 다시 컨디션이 안 좋아지고 만다.


나를 지나쳐 빠르게 앞서가는 사람들은 오늘 어디까지 가려는 걸까. 나도 모르게 덩달아 빨라지는 발걸음을 눈치채고 나면 이미 발이 부어 있다.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심지어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끝나지 않는 과제와 같다.



2. 알베르게에 관하여,

다음 동네가 정해졌다면 한두 군데 알베르게를 미리 찾아 둔다. 정해진 것은 아니다. 마을에 머물러도 좋고, 다음 마을로 이동해도 좋다. 그저 이번 여정에서는 마음이 가는대로, 오로지 바람을 따라 흘러가 보자고 생각했다.


ep1. 숙소에 볕이 들지 않으면 눅눅하다. 몸이 간지러워지기 시작하고, 잠에 잘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잠에 들더라도 추워서 이른 새벽에 깨고 만다. 코골이가 심한 사람을 만나거나, 침대가 심하게 뒤틀려 있는 등 다양한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함께 숙소에 있는 친구들은 곧잘 이런 말을 한다. 경험의 일부잖아. 맞는 말이다.


ep2. 가고 싶던 알베르게는 이미 예약이 다 찼다. 어쩔 수 없이 근처에 있던 평이 좋지 않은 알베르게로 발을 돌렸다. 저렴한 가격에, 햇볕이 잘 드는 창문에, 깔끔한 주방까지 있었다. 가방 속에 아껴두었던 라면을 꺼내 야무지게 끓여 먹었다. 어제보다 잘 먹었고, 잘 쉬었다.


매일 이렇게 배운다. 좋은 숙소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같다. 하지만 그것 또한 집착처럼 물고 늘어지게 되면 쉽게 감정을 낭비하게 되기에 그냥 마음이 닿는 대로 발을 옮겨 보자.



3. 따로, 또 같이.

외로운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애써 영어로 대화해야 하는 상황, 미소를 짓고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에도 에너지가 든다. 걷는 것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고 숙소에 도착하면 쓰고, 읽고, 온전히 쉬는 것에 집중하며 남은 에너지를 쓴다.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한정된 에너지를 분배하는 것은 중요하다. 가끔 한 번씩 친구가 생기기도 하지만, 나는 지독히도 느린 순례자 이기 때문에 결국 모두가 나를 앞서간다. 다시 혼자가 된다.




이 모든 법칙을 유지하기 위해 기반이 되어야 하는 것은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다. 무조건 적인 것은 없다. 순례길에서 하루 이틀 지내다 보니 나름의 루틴을 만들게 되었고, 계획한 일정을 제시간에 해내지 못하면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몇 시까지는 다음 마을에 도착해야 해, 다리가 아파도 쉴 수 없어. 아집이 또다시 나를 붙들어 맸다. 하지만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쉬고 싶다면 과감하게 쉬어 가자. 40일 넘는 기간 동안 건강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면 지금 5분 쉬어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유연하게 계속해서 나를 들여다보는 것. 사실 이것이 순례길에서 사실 가장 최우선 되어야 할 법칙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