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허기를 달래주는 음식
엄마한테는 비밀이지만, 어렸을 때 나는 엄마가 해준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계란 프라이는 언제나 앞뒤로 바짝 익혀서 먹어서, 서니 사이드업 형태의 계란 프라이를 보았을 때의 충격은 상당했다. 원래 이게 이렇게 예쁜 음식이었나? 게다가 떡볶이는 보통 떡국떡으로 만들었다. 나는 떡국을 먹을 때도 정확히 한 수저에 떡 하나만 먹는 버릇이 있어서, 국물이 자작한 떡볶이를 떡국떡으로 하면 떡이 너덧개씩 뭉쳐 있어서 싫었다. 물론 떡을 다 먹고 난 다음에는 제 아무리 배불러도 참기름에 김을 부셔 넣고 밥을 볶아 달라고 조르긴 했지만. 카레 취향도 상당히 달라서, 나는 건더기가 큼직한 것을 좋아했는데 엄마는 잘게 자르는 것을 좋아하셔서 해줘도 건성건성 먹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평생 일을 했기 때문에 초등학생 때는 엄마가 점심 반찬으로 해두고 간 음식을 데워 혼자 먹어야 했다. 대부분 그 음식은 감자채 볶음, 고추장 감자찌개, 계란 프라이, 그리고 3분 카레가 대부분이었다. (아마 엄마가 해준 카레에 투정을 하니까 그냥 3분 카레를 주기로 했던 모양이다.) 아빠와 오빠, 그리고 나 또한 인스턴트 라면 마니아가 될 법했던 게, 한 번 만든 반찬을 며칠이고 먹으면 아무래도 자극적인 다른 음식이 먹고 싶어 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자취 생활을 하고 있으면 그런 음식이 종종 떠오른다. 엄마가 너무 많이 해줘서 물렸다고 생각한 바로 그런 음식들. 특히 고추장 감자찌개의 경우 밖에서 그런 음식을 팔지도 않기 때문에 비슷한 걸 먹으려면 직접 만들어야 한다. 가끔 엄마네 집에 갈 때면 엄마가 미리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하라고 하는데, 삼계탕이나 닭볶음탕처럼 비교적 거창한 게 먹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냥 계란말이나 찌개를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그런 평범한 반찬들에 삼겹살을 구워 오이 무침하고 오물오물 먹다 온다. 물론 고봉밥과 함께. 오빠와 나는 종종 그렇게 그득 퍼 놓은 밥을 보면서 얘기한다. "내가 소유?"
하지만 혼자 나와 살면서 아플 때 제일 간절한 것이 있다. 바로 끓인 밥이다. 그냥 누룽지와는 조금 다르다. 엄마는 전기밥솥에 한 밥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항상 압력밥솥에다가 밥을 했다. 누룽지가 조금 생기도록 밥을 약간 오래 안치고, 다된 밥을 퍼 놓고 나면 바닥은 잘 긁어지지 않는 부분이 남는다. 그 상태 그대로 물을 부어 한소끔 끓인다. 끓이는 동안 바닥의 밥을 긁어 준다. 물을 너무 많이 해도 싱겁고 적게 하면 그냥 퉁툴 불은 밥이 된다. 밥을 새로 하면 그 끓인 밥이 한 대접 나오는데, 숭늉은 따로 덜고 끓인 밥은 보통 엄마랑 내가 나눠 먹었다. 그 끓인 밥을 먹으면 속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당연히 압력밥솥으로 일일이 밥을 해 먹는 일은 품도 들고 귀찮다. 따라서 자취방에 압력밥솥은 없다. 그래서 혼자 아파서 끓인 밥을 해 먹고 싶어 지면, 햇반을 데운 다음에 그 밥을 반쯤 덜어 냄비 바닥에 얇게 깔고 조금 태워서 끓인 밥을 만든다. 잘 되는 때도 있지만 보통 뭔가 시원찮다. 혼자 소화가 안 되는, 열이 나는, 온몸이 누구한테 얻어맞은 듯 아픈 상태로 물 조절이나 불 조절에 실패한 끓인 밥을 묵묵히 먹고 있자면 세상 누구보다 고독한 기분이 든다. 요즘은 그나마 그냥 시판 누룽지를 사서 뜨거운 물을 부어 먹어 실패 확률은 낮아졌지만, 그래도 항상 집에서 먹던 그 맛이 생각난다. 아마 내 영혼의 허기를 달래는 것은 그 '압력밥솥에서 밥을 할 때 일부러 한 박자 늦게 불을 꺼서 살짝 태운 부분을 남긴 채' 끓인 밥인 모양이다. 애정이 없으면 일일이 그런 귀찮은 짓은 못한다. 그래서 그게 아플 때면 그렇게 생각이 나는가 보다.
* 제목 사진의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