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맘 때쯤이면 언제나 찾아오는
신생아 모자 뜨기의 계절이 돌아왔다. 세이브 더 칠드런이라는 단체에서 매년 겨울마다 진행하는 캠페인이다. 아프리카 지역의 신생아들의 체온 보호를 위해 털모자와 담요를 떠서 보내, 영아사망률을 낮춘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면 되겠다. 보통 모자 뜨기 키트를 구매하게 되는데, 사실 그 돈이면 양산형 공장제 모자나 담요를 구입해서 보내주는 게 시간이나 품질면에서 훨씬 효율적일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좀 더 품이 들더라도 직접 내 손으로 수고를 한 '봉사'를 더 의미 있다고 보니까 참여율을 높이는 데는 기부보다 이쪽이 낫다. 어설프게나마 내 손으로 뭔가를 뽀작뽀작 만드는 재미도 있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연대감도 생기고, 실제 어딘가의 어린아이도 살릴 수 있다니, 1석 3조다.
다만 나의 경우는 매년 키트를 구매하긴 하는데 단 한 번도 보낸 적이 없다. 분명히 키트 판매 수익금도 어린이를 돕는 데 사용된다고 했고, 키트를 구매한 사람이든 그냥 뜨개질이 취미인 사람이든 이 시즌이면 열화와 같이 세이브 더 칠드런으로 모자를 보내고 있으므로 내가 보내지 않는다 해서 아마 부족함은 없을 것 같다. 키트를 사놓고 모자를 뜨지 않거나 완성을 안 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적어도 한 개, 많으면 두세 개도 뜨기는 하는데, 뜨개질을 야매로 배운 나머지 마무리가 늘 이상하다. 배색을 넣은 경우 마무리를 하고 나면 늘 색이 바뀌는 선이 삐뚫게 된다거나, 어딘가 코가 빠진 게 거의 구멍처럼 보인다던가, 폼폼이라고 만든 게 그냥 다리 많은 게나 성게처럼 보인다던가, 그런 식이다. 아무래도 주눅이 들어 보내기가 민망하다. 그렇다. 내가 바로 똥손이다.
그런데도 어쩐지 늘 뜨개질에 대한 로망이 있다. 5년 전인가, 큰 맘먹고 초보도 할 수 있다는 4주 완성 코바늘로 무릎담요 뜨기 클래스를 수강한 적이 있다. 간단하게 도안을 보는 방법을 익히고, 4가지의 기초 뜨기 방식으로 모티브를 여러 개 만들어, 최종적으로 이어 붙여 담요를 만드는 과정이다. 손에 좀 익고 나자 뭣에 홀린 듯이 모티브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만들다 보니 초반에 만든 것과 나중에 만든 것이 크기가 많이 달랐다. 그런 애들을 이어 붙이고 테두리 작업까지 하고 나니, 뿌듯하긴 한데 아무리 봐도 예쁘지는 않았다. 좀 더 연습해 봐야지 싶어 각종 도안을 수집하고, 책도 사고, 실도 사고, 코바늘도 호수별로 사들였다. 그리고 한동안 기세 좋게 인형을 비롯해 이런저런 것들을 떠보았지만, 아무래도 내가 만든 게 내 눈에도 예뻐보인다거나,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즐기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지금은 완전히 까막눈이 되어 도안을 봐도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매년 시도를 하면서도 모자 뜨기에서 대바늘 코는 매번 동영상을 봐야 만들 수 있다. 바느질과는 좀 다르긴 하지만,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절대 여자로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솜씨다. 그런데도 그 이후 이사를 세 번이나 다니는 와중에 뜨개실과 바늘들은 차곡차곡 캐리어에 담아 끌고 다니고 있다. 노래를 들으며, 고민을 하며, 자연스럽게 손을 놀려 편물 하나를 자연스레 완성한다, 그런 로망이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에 나오는 미스 마플처럼, 뜨개질을 하면서 추리를 풀어 나가는 것도 아주 멋질 것 같고.
비록 솜씨가 없어도 이런 종류의 일은 사실 시간을 들여 꾸준히 하면 반드시 중상 수준까지는 이른다. 그 이상은 센스 있는 자들의 영역이다. 지금은 퇴근 이후 시간에 운동이네 30일 글쓰기네 맥주 마시기(...)에 겨를이 없지만, 한 겨울이 될수록 집안에 있는 시간은 더 많아질 테니 다시 뜨개질에 도전해 봐야겠다. 올해는 정말 예쁘지 않아도 모자를 완성해서 보내볼 생각이다. 매년 그렇게 조금씩이나마 솜씨를 쌓으면 분명 언젠가는 손으로는 뚝딱 모자를 만들어 내고, 머리속에서는 추리를 거듭하다, 매듭을 지은 이후에는 고개를 들어 '범인은 바로 OO!' 하고 외칠 수 있겠지. 그러니 올해도 망설이지 말고 키트 구매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