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은 막걸리보다 독서 (feat. 커피)
점심시간에 회사 4층에 새로 생겼다는 서가를 찾았다. 회사 서가라고 하면 막연히 불신감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우선 책의 권수 자체가 상당히 많았고 다양한 장르를 두루 갖춰 놓았다. 책을 읽을 공간도 많다. 어느 서점 인가로부터 큐레이션을 받았다는데, 그 때문인지 그 서점의 책 배치와 비슷한 것도 같다. 회사라는 점을 제외하고 생각하면 꽤 괜찮은 중형 서점에 와 있는 기분도 들었다.
서가 주변의 테이블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혼밥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고, 나처럼 서가 주변을 배회하며 책 구경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책장마다 잡지라던가 예술, 한국 문학, 에세이 등이 나누어져 있었고, 책장 안에서도 각 단마다 장르가 세분화되어 있었다. 최근에 에세이는 워낙 많이 봤으니까 다른 쪽을 좀 보려고 했는데, 재밌는 제목의 책이 있었다. <날씨의 맛>이라는.
나는 그 책을 집어 들고 창가 쪽 바 테이블에 앉았다. 어차피 시간이 많지는 않아서 그냥 휘리릭 넘겨볼 생각이었다. 날씨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이 쓴 에세이가 실려 있었는 책이다. 부제는 '비, 햇빛, 바람, 눈, 안개, 뇌우를 느끼는 감수성의 역사'이다. 첫 번째 장에는 오늘 날씨에 딱 들어맞게도 비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자세히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비와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의 말의 인용이 제법 많았다. 그중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의 다음과 같은 말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비를 음미하려면) 정신은 여행을 하고 몸은 쉬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를 음미하기 최적의 상태는 비 오는 날 어디 밖에 나가 돌아다니지 말고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고는, 바깥에 내리는 비를 보며 아 좋다, 하는 바로 그것이라는 얘기다. 그 말을 저렇게 멋있게 표현하다니 정말 옛날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마침 창가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으니, 비를 음미하기에 적절한 상태 같아 유쾌했다. 비록 몸은 회사에 있지만(그리고 몸을 쉬면 안 되겠지만), 정신은 책 속으로 여행하는 중이다. 제법 괜찮다.
조금 더 책을 볼까 말까 하는 타이밍에 바로 옆자리에 나란히 세 명의 사람들이 앉았다. 그들의 점심 식사는 이제 시작인 모양이다. 음식 냄새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책 읽는 데는 방해가 된다. 어차피 점심시간은 10분밖에 남지 않았으니, 아쉬운 마음으로 책을 서가에 돌려놓고 다시 사무실 자리로 향한다. 그래도 우연히 만난 저 한 문장으로 오후 시간이 다소나마 즐거웠다. 저녁 약속이 없는 날에는 퇴근하고 4층에서 독서에 잠기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런 날 비가 오면 더, 좋겠다.
<날씨의 맛> 책 정보는 여기에.